세상에 기품을 잃지 않고 싸우기란 얼마나 힘든 일인가? 상대에 대한 칭찬을 하기란 또 얼마나?
특히 속으론 들들들 끓으면서 상대에게 악수하자고 청하기란 더더욱.

거리에서 한 여자가 울고 있다. 입술은 푸르게 젖었고, 눈은 너무 띵띵 부었다.
중심을 못 잡은 몸체에 잦바듬히 매달린 가녀린 어깨는 차마 땅에 닿기 직전이다.
비는 모든것에 머물며 차디찬 바람과함께 기세를 올리고 있다.

여자의 눈물은 빗물과 섞이었다.

딱히 이유가 있어 멈춰 선 것은 아니었다. 누구나 설 수 있듯, 무심결에 섰을 뿐이다.
그리고 나처럼 방갓을 쓴 사내 하나가 지나가다가 멈춰 섰다. 그런데 이 사내 보게.
다짜고짜 나에게 왜 여자를 울리느냐고, 연약한 여자를 그렇게 울리면 쓰겠냐는,
힐난의 눈초리를 던진다.

나는 궁금하다. 그가 무슨 자격으로, 그렇게 마음대로 추정하는지,
그런 야무진 눈초리를 보내는지. 상황의 전말을 다 알지도 못하는 듯한데.

그러나 나는 말문이 막히었다. 하필이면 그때 여자가 눈물 그렁한 눈을 들어 나를 바라보았던 것이다.
눈사위는 축축이 젖었고, 눈동자엔 원망이 가득하다. 내 보기엔
여자의 눈빛이 그저 평범하기만 하였으나 방갓의 사내는 여자를 힐긋 보곤,
불분명한 확신에 자신이라도 생긴 듯 눈초리에 힘을 주어 나를 몰아붙인다.

나는 말한다.

‘이보시오! 선생! 나는 여자를 울릴 재주도 없거니와, 울리더라도 기품 있는 여자를 울리었지,
이렇게 바보처럼 우는 여자를 울린 적은 없소.’

그러나, 사내는 아예 내 말은 무시하는 태도이다. 허랑하여 먼산바라기를 하는 내 눈앞에 느닷없이 불빛이 인다.
별이 빛난다. 화끈거리는 이마를 싸쥐며 나는 반사적으로 주먹과 발을 뻗기 시작한다.

전투는 그렇게 시작되었던 것 같다. 상처는 깊다. 상대의 상처 또한 내 상처이거니와,
그리고 생각해 보건대, 그와 내 상처는 모두 각자의 책임이 분명하거니와,
아하 이런, 나는 이유를 찾을 수가 없다.

눈을 돌려 구원의 눈길을 찾아본다. 비는 하염없이 내리고, 그 빗줄기 속, 허공에 떠다니는
<여유롭고 영롱한 정신>을 향해 힘없는 손을 뻗어 본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돌 던진 사람은 저만치서 허허로이 웃고 있는데, 괜시리 돌 맞은 사람들끼리 멱살 잡고 있는 건 아닐까,하고.

결국 나는 피실피실 웃고 만다. 그리고 다시금 생각하는 것이다.
세상일이란 그런 것일 게라고. 모두들 그렇게 겉만 단색인 총천연색 모순들을 안고,
그렇게 조화로운 척 꾸미고 살아가는 건 아니겠냐고? 그러나 또 어쩌란 말인가?
상처를 거쳐야 무장무장 빛나는 그 수많은 영혼과 정신들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