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평범한 회사원 나카노 시게키씨(32)는 컴퓨터엔터테인먼트등급기구(CERO:Computer Entertainment Rating Organization)로부터 곧 출시될 비디오게임 ‘미시간’의 심사관을 모집한다는 공지를 듣고, 심사원에 응모했다.

자신 스스로가 게임광인 이유도 있지만, 출시전 게임 내용을 평가하고 이용자 연령제한 등급을 매긴다는데 묘한 매력을 느껴서이다. 일본의 게임물 연령제한은 CERO라는 공공기관을 통해 이뤄지지만, 그 내부의 심사는 전적으로 민간인들로 구성된 민간심사위원회가 담당한다. 20대에서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참가하고 있을뿐 아니라, 남녀비율도 대등한 수준에서 구성이 이뤄진다. 직업도 주부에서부터 법조인, 교사, 직장인, 프리랜서 등 다양하다.

심사원을 모집하는 공고가 나간 뒤, 응모를 받고 일정기간 교육기간을 거치면 심사 자격이 주어진다. 이들이 게임물을 18세 이상 성인들에게만 허용할지, 15세 이상으로 할지, 전체이용가로 할 것인지를 최종결정한다.

컴퓨터엔터테인먼트사업자협회(CESA)의 산하기구였던 CERO는 지난 2002년 6월부터 독자적 심의활동을 전개해오고 있다.

하지만 게임선진국 일본에서도 초창기부터 이러한 민간자율 심의기구가 효율적으로 가동됐던 것은 아니다. 지난 97년 CESA는 회원사들끼리 만든 ‘표현규칙’에 따라 게임물에 관한 업계 나름의 규제를 진행했다.

이때는 출시될 게임물에 대해 표현규칙의 규정에 따라 전혀 문제가 없는 A등급, 주의를 요하는 B등급, 판매금지에 해당하는 C등급 등 3개 등급으로 분류하는 판정을 내렸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이러한 분류방식에 문제점이 드러났다. 게임물은 점점 더 복잡하고, 미묘하게 진화되고 있는데 3개 등급분류가 너무 많은 허점들을 노출시켰던 것이다. 특히 게임물에 대한 최종 판단을 소비자가 하는데도 불구하고 이때는 사업자들 중심으로 등급이 매겨져 사용자의 의견이 전혀 반영될 수 없었다.

그러다 98년부터는 CESA 내 윤리위원회뿐 아니라 외부 전문가까지 불러와 심사작업을 수행했다. 이때부터 심의다운 심의가 이뤄진 것이다. 당시 외부전문가로 왕성하게 활동했던 일본대학 츠키오카 교수는 “이전까지는 심의랄 것도 없을 정도로 업계의 독단적인 분류가 이뤄졌다”며 “게임의 사회적 영향력이 커지면서 심의 및 등급분류에 대한 요구가 높아졌고, 시장이 그런 시스템을 수용할 만큼 성숙한 것도 환경적 요인이 됐다”고 회고했다.

그는 “윤리위원회와 외부전문가 공조로 이뤄지던 것을 이후 더욱 개선해 민간자율 시스템까지 발전하게 됐다”며 “다양한 계층의 의견과 신·구세대의 평가기준이 종합됨으로써 가장 현실에 근접한 등급을 내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선진 심의시스템이 효과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은 그것을 잘 지키고, 따르는 성숙한 시민의식에 기인하는 바 크다. 마이니치(每日)신문에 근무하는 요네쿠라 토시타카 씨는 “게임물 전면에 CERO의 연령표시가 붙어있으면 판매자든, 구매자든 그것을 철저히 지킨다”며 “그것을 어기더라도 직접적인 법적 제재나 처벌이 가해지지는 않지만 자율적으로 지키는 것이 사회적 합의사항”이라고 말했다.

12살과 9살 된 두 자녀를 둔 요네쿠라 씨는 거실 게임타이틀 보관함에 자신이 즐기는 18세 이상 게임과 자녀용 전체 이용가 게임을 함께 놓아두고 있지만 단 한 번도 ‘사고’를 낸 적이 없다. 자녀들에게 미리 게임에 연령제한을 두고 있는 이유와 그 근거를 설명했고, 자녀들은 그것을 생활 원칙처럼 지키고 있는 것이다.

그는 “학교, 가정, 친구집단 등에서 모두 올바른 게임이용에 대한 인식이 잘 잡혀있기 때문에 아이들도 어른용 게임에 대한 유혹에 빠지지 않게 된다”며 “무조건 차단하기보다는 열어 놓고 지키는 방식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CERO 심사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도 모두 이렇게 잘 갖춰진 사회구조에서 성장한 이들이다. 따라서 아무리 민간심의라고는 하지만 가장 중립적이고 공정한 결과를 내올 수 있는 것이다.

또다른 한 심사원은 “심의에 들어가면 일반 생활 때보다 훨씬 더 엄중한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며 “30여명으로 구성된 심사원 모두 자신이 내린 결정에 내 아이와 가족이 영향받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심의에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게임을 즐겼고, 장성한 이후에도 게임을 즐기고 있는 심사원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심의활동 자체가 즐거움”이라며 “규제를 목적으로 한 살벌한 신경전이라기 보다는 건전하고 밝은 게임 전파를 위한 토론과 공론의 장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게임 개발-심의 및 등급분류-이용 문화 등 관련 3개 측면이 모두 잘 짜여진 톱니바퀴처럼 원활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이 일본 게임산업의 최대 경쟁력이다.

도쿄=이진호기자@전자신문, jholee@etnews.co.kr



[인터뷰]마치타니 다로 CESA 사무국

“게임을 건전하게 즐길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마련하고, 게임 관련 산업적 수익이 이용자들과 사회로 환원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미래를 위한 가장 확실한 투자라고 생각합니다.”

‘2004 도쿄게임쇼(TGS2004)’ 준비로 눈코 뜰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컴퓨터엔터테인먼트사업자협회(CESA) 사무국 마치타니 다로<사진> 씨는 게임의 산업적 성장과 환경 개선이 같은 바퀴에 물려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건전한 게임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가장 시급한 현안은 CERO 심의의 대상 및 범위를 확대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심사를 받든 받지 않든 업체 자율에 맡겨뒀지만 앞으로는 모두 심사에 참여하는 방향으로 가야합니다. 긍정적 변화의 하나가 게임기 회사들이 CERO 심의를 받지 않은 타이틀을 자사 게임기 타이틀용으로 허용하지 않으려는 추세로 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마치타니 씨는 또 CERO의 공개적인 심의시스템에 커다란 신뢰감과 자부심을 표했다.

“모든 이들에게 문호를 개방하고, 심사원을 선발하지만 탈퇴도 자유롭습니다. 하지만 30여명의 필수 인원은 계속해서 유지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만큼 게임 인구의 저변이 넓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다양한 시각과 세대를 뛰어넘는 안목이 적용되기 때문에 거기서 나오는 결과도 사용자들로부터 절대적인 신뢰를 얻고 있습니다.”

CESA는 올해 도쿄게임쇼에서 불우이웃을 돕기 위한 경매행사 등 다각적인 사회공헌 활동을 접목시킬 예정이다. 게임이 단순한 소비·유흥 문화로 인식돼오던 일본에서 작지만 큰 변화이다.

“거대 게임개발사로 성장한 코나미가 교육사업에 대해 꾸준한 투자를 진행하고 있고, 남코가 어린이방송을 운영하는 등 게임전문 업체들의 사회공헌이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점에 주목해야합니다. CESA 차원에서도 회원사들에게 사회적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주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마치타니 씨는 일본에선 큰 인기를 끌고 있지만 한국에선 극히 일부분의 소수문화로 자리 잡은 카드게임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했다.

“청소년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는 카드게임이 일본에선 하나의 게임장르로 분명히 자리 잡았습니다. 그 과정에는 허드슨 등의 업체가 건전하고 개방적인 전용게임방을 만들어 운영하는 등 사후노력의 결과가 많이 작용했습니다. 반면 한국에선 유통만 있고 사후서비스는 없는 부조리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도쿄=이진호기자@전자신문, jholee@

개재일자 8월 23일
출처 : 전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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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내용은 2006년 민간자율등급제와 연관되어 좋은 참고자료가 될 듯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