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랭크인도 못할뻔했던 '태극기 휘날리며'

상식 뒤엎은 거액 투자·꽃미남 캐스팅"크랭크인 못하지…" 충무로 한때 비관론

시나리오 준비부터 완성까지 5년. 20여개의 세트, 전국 18개 지역에서
140여회 순회 촬영, 연인원 2만5000명의 엑스트라 동원, 전투를 위해 구축된 2km의 진지,
6t의 폭약, 50년대 의상 4000벌 등의 화제와 함께 대한민국 영화사를 연일 새로 쓰고 있는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가 지난 3일에는 전국 관객 1100만여명을 돌파, 한국 영화 사상 최고
흥행기록까지 갈아치웠다. 얼마 전에는 아메리칸 필름마켓에서 60여억원이나 팔아
한국 영화 사상 해외 최고 판매액을 기록했고, 오는 6월 25일부터 300여개 스크린에서
개봉되는 일본에서도 300만명의 관객을 예상, 무려 400여억원의 흥행대박이 점쳐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경이적인 결과 뒤에는 ‘대장금’보다 더 드라마틱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숨겨져 있다.
먼저 영화 기획 당시 충무로 상황은 최악이었다. 110억원짜리 초대형 블록버스터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등의 참패로 “50억짜리 이상은 다 망한다”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다.
강제규 감독의 평은 또 어떠했는가? “영화 배급에 재미 들려 메가폰에 관심이 없다”
“‘단적비연수’와 ‘베사메무쵸’의 흥행 불발로 감독뿐만 아니라 제작자로서도
한물 간 거 아니냐?”며 비판적이었던 것이 대세였다. 그런 감독이 그 당시 순제작비
130억원짜리 초대형 블록버스터를 만든다고 하니 다들 “잘못하단 영화계를
두 번 죽이는 일”이라며 걱정이었다.



캐스팅도 문제가 많았다. 원조 꽃미남을 하나도 아닌 둘씩이나 주인공으로
캐스팅했을 때 다들 “호스트바 차리는 것도 아닌데 전쟁영화에 웬 꽃미남들이냐”며
불만이었지만 강제규 감독은 “내가 열흘만 군대식으로 뺑뺑이 돌리면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될 것”이라며 일축했다.



하지만 프로젝트 규모가 너무 커 준비 기간이 몇 개월 가량 길어지자 충무로에선
“크랭크인 못할지도 모른다”는 흉흉한 소문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게다가 감독이
직접 그리던 스토리보드도 딴 사람이 그리고, 직접 쓰던 시나리오도 보조작가들에게
맡겼다고 알려지자 괴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물론 ‘시간이 곧 돈’인 스타급
배우들은 크랭크인이 몇 달씩이나 지연되면 곧바로 계약 위반을 통보하고 다른 작품을
알아보기 시작한다. 하지만 장동건 등 주인공들은 강제규 감독만 굳게 믿고 거의 반년을
‘화려한 백수’로 지내야만 했다.



시나리오를 조금만 고쳤으면 국방부에서 한국전쟁 당시 쓰였던 탱크·총기 등
군 장비 지원을 받을 수 있었지만 강 감독이 거절하는 바람에 1만9000여벌의
군복 등을 수억원을 들여 새로 사야 했던 영화 ‘태극기 흔들리며’. 만약 이 영화가
망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국내 투자를 받지 않고 모든 것을 ‘올인’한 제작사는 물론 영화계 전체를 수년간
숨도 쉬지 못하게 죽여 놓았을 것이다. 이런 상상 때문일까? 오늘따라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포스트의 부제가 더 눈에 크게 들어온다. “우린 반드시 살아서 돌아가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