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1202/h2012020721132186330.htm 지젝 인터뷰 (한국일보)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20629170347 지젝 인터뷰 (프레시안)
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1206/h2012062821115686330.htm 경희대 강연 요약 (한국일보)
언론의 논조에 따라 지젝의 말을 인용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있으므로 비교적 읽을만 하다고 생각되는 것으로 골라왔습니다.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슬라보예 지젝으로 검색하시면 더 많은 정보를 찾으실 수 있습니다.
슬라보예 지젝은 슬로베니아 출신의 철학자이자 저술가입니다. 철학이라는 부분에서는 현재 가장 핫한 아이콘이어서, 알맹이는 없고 지젝은 그냥 유행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 지젝이 최고라고 추어 올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판단은 각자의 몫입니다.
알맹이가 없다는 주장 하는 사람들의 주장을 들어보고 싶군요.
우리는 현재 유로존은 말할 것도 없고, 환경, 사회, 교육, 예술, 산업 등등 모든 분야에서 위기가 공고해진 시대에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 위기의 해결방안을 포스트모더니즘의 출현과 함께 새로 모색했으나 모두 실패했는데도 실패를 인정하지 않으려 억지 쓰는 구좌파 세력에게 실망만 큽니다.
게다가 한국에는 아직 에크리, 세미나 등의 라캉의 저술 번역본도 없는 상황에 일부 언론과 보수적인 학계에 뿌려진 지젝에 관한 이야기만으로 '알맹이가 없다.'라는 주장이 저는 다소 황당하군요.
저는 한국의 귀족노조에 대한 대중의 반발에 대해 지젝이 언급한 쌍용차 관련 코멘트가 아직도 머리 속을 맴돕니다.
"귀족 노조를 끌어내려야 할 것이 아니라, 노동자 모두가 귀족이 되어야 한다."
서울에 있다가 베를린으로 옮겨 생각을 해보니, 한국 사회는 정말 기형적입니다. 서비스란 이름으로 노동자가 노동자를 압박하는 사회라던가..
지젝이 말하는 바와 닿는 지점이 이 링크의 비디오라고 생각합니다. 이 비디오는 제게 할 말을 잃을 정도로 충격적이었습니다. 몇 개월이 지난 지금에 다시봐도 이 충격은 가시질 않는 군요.
파국, 붕괴. 이제 우리는 인정해야만 하겠지요. http://wallflower.egloos.com/3740874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이라는 지젝의 저서를 읽은 적이 있는데 여기에서 제가 느낀건, 모순, 알맹이 없음...이네요...
우선 알맹이 없음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자면,
지젝은 어떤 대안에 대해서 거론하기 보다는 올바른 질문의 중요성에 대해서 주장하는 측면이 큽니다.
가끔 대안을 논하기는 하지만 그건 거의 개인 의견에 가깝고, 그 대안을 절대적인 것으로 주장하지 않습니다. 단지 자기는 그게 좋아보인다. 정도랄까요? 마지막에는 자기도 잘 모르겠다라는 식으로 회피를 하는 것이 부지기수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싫어하는 건 절대적이더군요. 대표적으로 자본주의에 대해서 만큼은 그 어느 체계보다도 신랄하게 비판을 하고 극도로 혐오합니다. 반대로 공산주의의 승리에 대해서는 무한대에 가까운 애정을 보입니다만, 그것이 구체제의 공산주의는 아니고 무슨 공산주의인지에 대해서도 굉장히 애매한 어법을 씁니다. (적어도 제가 느끼기엔 그랬습니다.)
지젝의 말 마따나 지금 전세계는 파국의 위기에 휩싸여있고, 여기에서 대중이 바라는 건 도대체 답을 모르겠는데 여기서 우린 뭘 어떻게 해야되냐? 의 답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답을 말하지 않고 질문의 중요성만을 강조하는 것은 상당히 무책임하다라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알맹이가 없다라는 건 그런 측면의 알맹이가 없다는 겁니다.
이와 관련해서 지젝에게 동조하시는 분들께 하나 더 묻고 싶은게 있는데요....지젝의 저서를 수권씩 다 읽고, 그의 헤겔과 라캉 관련된 변증법 운운하는 저서들까지 모두 파악하고 철학적인 소양을 모두 쌓는것 제외하고 지젝이 대체 우리에게 무엇을 하기를 바라는지 쉽게 설명해주실 수 있는 분 있나요??
자신의 운동이 대중적으로 퍼져나가길 바라는 사람이라면, 절대 복잡한 철학적 이론을 바탕으로 주장해서는 안된다라고 생각합니다.
대중은 좀더 단순한 것을 원하고, 어떤 것을 해라! 그러면 너와 이 세상이 구원받을 것이다! 라는 구체적이고도 단순한 지침을 바랍니다.
지젝의 이론이 그의 모든 서적을 다 읽어야만 파악할 수 있는 것이라면, 헤겔과 라캉까지 모두 공부해야만 알수 있는 것이라면....그런 것을 어떻게 대중적인 운동으로 승화시킬 수 있나요?
그리고 대중적인 운동으로 승화시키지 않고서 지젝이 원하는 것처럼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건가요??
전 경희대 강연에서 지젝이 한 말을 다음과 같이 이해했습니다.
20세기의 사회주의는 철저한 실패였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 이상 이데올로기가 외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세계를 살지 않는다. 후쿠야마의 말대로, 역사는 끝난 듯 보이며, 궁극적으로 어떤 문화권이든 간에 미국식 (정치적) 자유주의 시스템으로 향하게 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세계엔 여전히 내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이데올로기들이 있다. 우리는 그걸 경계해야 하고, 그것에 홀리지 않고 실질적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지젝은 그 '내적으로 작동하는 이데올로기'를 수십년 간 밝혀온 것 같습니다.
Dransis님 말은 "공산주의의 길고긴 역사를 한마디로 함축해서 알려주세요."라고 질문 했을 때 자본주의적인 방식으로 공산주의에 대해 답하고자 하는 것처럼 느껴지네요.
그리고, "지젝의 말은 너무 어려워서 대중화되기 어렵다." 라구요. 라캉의 저서를 직접 읽으며 독해하는 것보다 지젝이 대중문화를 통해 풀어주는 방식이 쉽다고 생각하는데요.
68혁명을 실제로 성공시키는 데는 상황주의자들의 그룹과 Guy Debord가 있었는데, 대중들이 당시 정치, 철학적인 것을 모두 이해하고 혁명을 성공시켰던가요?
알맹이가 없다고 하셨는데, Dransis님의 댓글이 오히려 알맹이 없는 지적같다고 생각하네요. 어떤 부분이 어떻다.. 도 아니고, 그는 이러 이러 하게 느껴졌다.. 라.. 감상적인 평..
지젝이 알맹이가 없다는 기사를 보신거 같기도 한데, 제가 볼 때 그 기사는 좀.. ㅎㅎ 이미 반론들도 올라왔고, 지젝의 알맹이가 없다는 알맹이 없는 기사를 모두들 스크랩하고만 있어서..
이건 다른 이야기이기야 하지만, 제가 독일와서 느낀 바로는 한국의 교육 시스템은 시민 정치를 제거하기 위한 전위 단계 같네요.
여기선 어릴 때부터 맑시즘, 공산주의에 대해서 배우고, 심지어 외국인이 어학을 공부할 때도 노동자의 권리, 파업, 정치정당에 관한 것들이 상당부분 포함되서 나오거든요.
크리스티앙 불프가 대출의혹만으로 사임할 때는 "대통령은 아무나 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누구보다 더 큰 도덕적 책임을 져야한다."라는 독일어 선생님의 이야기 듣고, 유럽 정치가 어떤가 다시 느꼈어요.
게다가 수업시간에 68혁명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데, 한국은 물론, 다른 아시아, 아랍에서 온 거의 모든 학생들이 68혁명을 모를 뿐더러 들어본 적도 없다라 하니..
굉장히 놀라면서 현대 민주주의의 기본이 되고, 실제로 여성참정권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 이 사건을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에 굉장히 이상해하더군요. 박정희 만세를 외쳐야하나.
68혁명이 성공한 혁명이라구요? 68혁명은 정치성향에 따라서 성공했다라고 보는 사람, 실패한 혁명으로 낙인찍는 사람 등등이 매우 많습니다.
사실 68혁명은 자유주의적인 측면에서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다라고 할수 있을 뿐, 68혁명의 과격성은 일반의 반감을 불러왔고, 결국 반쪽짜리 혁명으로 전락했습니다.
반쪽짜리라도 의미가 없다라고 할수는 없습니다만 말입니다.
그리고 공산주의 혁명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공산주의는 적어도 지젝보다 훨씬 명확하게 하고자 하는 것을 제시했습니다. 공산당 선언 읽으면 이게 어렵나요? 길기를 한가요? 상당히 쉽거든요??
공산주의자들이 하고자 하는건 명확합니다. "공산주의"에요. 일반에게 전파하기 이것보다 쉬운 게 있을까 싶을 정도죠.
"너희들이 자본가들에게 핍박받고 있으니 우리 공산주의자들이 걔네들꺼 빼앗아서 너희들에게 나눠주겠다."
"너희들이 못사는건 모두 자본가 탓이다"
그러한 공산주의 마저도 스탈린에 의해서 곡해되고, 마오쩌둥에 의해서 곡해되어서, 스탈린주의, 마오주의, 주체사상 등의 왜곡된 사상들이 계속 탄생하는데....하물며 지젝은 어떨까요??
제가 봤을때 지젝의 이론은 68혁명 이상가는 성과를 내기 힘듭니다. 왜? 답이 없거든요. (알맹이라곤 말안하겠습니다. 질문도 알맹이라고 하시는 것 같으니까)
68혁명이 완전히 성공했다고 볼 수 없지만, 근대에서 현대 민주사회로 넘어오는 결정적인 전환점 아니었습니까?
실제로 이전까지만 해도 여성들의 참정권은 대개 인정받지 못했구요. 현대 시대의 성평등이 68혁명이 직접적 계기가 아니라면 언제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지젝은 <잃어버린 대의를 옹호하며, In Defence of Lost Causes>를 비롯한 앞선 저작들에서 이미 무엇을 해야할지에 대해 모두 설명했는데요.
왜 기자라는 양반들까지 지젝이 이미 본인의 저작들에서 풀어놓은 썰들을 ㅡ 심지어 그 책들이 지젝의 대표작들임에도 불구하고 ㅡ 참고 하지 않고 쌩뚱맞는 질문을 하는지 황당합니다.
알맹이라는 말이 계속해서 나오는 지젝이 최근 하는 말들 중 일부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파국은 다가올 것이며, 파국을 피할 방법은 없다. 다시 실패하라, 더 잘 실패하라."라고 말합니다.
이미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수 십년 전부터 지젝을 불쾌하게 생각하는 구좌파들은 지젝을 지겹게도 따라다니며 "지젝은 대안도 없고, 반동적이라는 것."이라 말하고 다녔습니다.
심지어 인류애를 거들먹거리며 감정적으로 호소하는게 유일한 좌파운동이라 착각했던 그 구좌파들이 말이죠.
그리고, 강의 하나 보고 이런 류의 비판은 좀 아니라고 봅니다.
이번 강연은 애초에 학술적인 목적을 둔 것이 아니고 대중을 향한 강연에 초점이 두어져 기획된 것인데,
지젝의 저서들을 읽어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몰려가 비판 기사 몇 개 읽어보고 이런 비판을 하는건.. 좀 아니죠.
ㅡ 제가 이런 비판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비판 기사를 읽었을거라 추측하고 있기 때문인데 비판이라는 글들이 한결같이 ㅡ 어투만 바뀐 ㅡ 같은 내용을 고수하면서
실제로 그 비판이 지젝의 주장과 관계가 없는데도 '비판'이라는 환상에 젖어있는 느낌일 뿐입니다.
알맹이 논란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보면 지젝에게 요구하는 알맹이는 사람들의 편리주의일뿐이고, 그저 재앙에 빠진 우리를 구해줄 영웅을 기다리며 한탄하는 패배주의일뿐이죠.
이런 식의 비아냥은 현대 민주사회를 일구어낼 수 있었던 68혁명과 당시의 상황주의자들조차 배부른 돼지들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자본주의의 지배자들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의 공모자들인 우리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으니 이 자본주의의 종말론적 재앙을 진화해줄 영웅이나 기다리자고 하는게 온당한 비판인가 하는 생각만 들어요.
그런 류의 비판이라면 차라리 지젝에게 알맹이를 요구하기보다 예수같은 인물의 부활을 위한 종교적인 제의가 건설적으로 보입니다.
다시 말해볼까요? '지젝은 빨간약을 선택 하자는 데 사람들은 지젝에게 힘든건 싫으니 파란약을 내놔라' 라고 하는게 지금 알맹이 운운하는 비판의 전부라고 보입니다.
자본주의를 여전히 욕망하면서 자본주의의 재앙에 대해서는 구원받고 싶다고 하는 것이 심리야 이해 되는데, 그런다고 그게 되나요?
"MTV가 망쳐놓은 음악산업은 존1나 열받지만, 그래도 나는 MTV 록스타가 되야만 한다." 라고 하는 응석쟁이 밴드들 같군요. 그런거죠.
그리고 공산주의를 그렇게 이해하신다니 답답하군요. 제가 독일와서 독일 학생들과 여러 계층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가장 깊이 느낀 것은 대한민국에서의 박정희는 아직도 살아있고,
그의 정신이 담긴 교과서 수정을 통한 박정희의 승리라고 봅니다. 민주주의가 가장 잘 발달한 국가라는 독일에서는 가장 큰 야당이 공산당입니다. 심지어 무정부주의 정당도 정당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교과과정에서 심도 있게 가르치구요. 설마 민주주의의 반대가 공산주의라고 착각하고 계신건 아니겠죠?^^ 그렇다면 지금 이야기를 완전 엎고 역사책을 꺼내 처음부터 이야기 해야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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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주의, 마오주의, 주체사상 등의 왜곡된 사상들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연구하지 않으면 실패는 반복될거구요.
지젝의 말이 뭐가 왜곡되었는지 이야기를 좀 해봐주시죠. 궁금하네요. 라캉철학의 본류와는 약간의 거리가 생겼지만, 여전히 라캉의 이론 안에서 해석하고 있는 것인데 지젝이 어떨지 설명을 제발 누가 좀ㅎㅎ
몇 년 전만해도 지젝의 저서들이 한국에 번역되면서 "라깡이 옳은 표기다.", "아니다, 라캉이 옳은 표기다." 라며 이런 말같지도 않은 말싸움을 논쟁이라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크게 변한게 없는 듯 합니다.
그리고 지젝에겐 알맹이가 없다면서 혁명, 혹은 그 이상적인 상태를 지젝이나 또 다른 학자들을 비롯한 특정 인물들에게 요구하고 있는 일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일인지 아시고 계시죠?
"파국은 다가올 것이며, 파국을 피할 방법은 없다. 다시 실패하라, 더 잘 실패하라." ==> 사람들은 이런걸 대안이나 알맹이라고 생각하지 않죠. 그냥 자포자기라고 생각하죠. 물론 저야 저런 문구가 실패하는 과정을 통해서 뭔가를 배워서 깨달은 다음에 새로운 뭔가를 건설할 것을 생각해라라는 건 이해하겠습니다만, 사람들이 원하는 건 그 새로운 뭔가가 뭐냐? 그걸 알려달라! 라는 거에요.
68혁명에 대해서 절대적으로 실패했다라고 말하진 않았습니다. 68혁명은 자유주의와 소수자들의 인권과 관련하여 상당한 성과를 거뒀습니다. 하지만 그 반작용도 만만치 않았죠. 마약과 폭력, 방화 등으로 얼룩진 시위 현장은 시위 문화등에 대한 환멸을 가져왔고, 히피들은 약쟁이로 전락하거나, 아니면 아주 반대쪽으로 넘어가서 오히려 과거의 동지들을 탄압하는데 앞장섰습니다. 그래서 절반의 성공이자 절반의 실패라는 겁니다.
하지만 님이 지젝을 옹호하시는 분임에도 지젝의 68혁명에 대한 입장은 왜 모르시나요? 제가 알기로는 지젝은 68혁명에 대해서 상당히 비판적인 입장인걸로 아는데요?
"한가지만 약속해달라. 여러분은 수십년 후 맥주나 홀짝이면서 '그때 우리는 순수하고 아름다웠지'라고 말하지 말아달라" => 지젝의 68운동에 대한 입장입니다.
지젝은 빨간약을 준다는데 사람들은 힘든건 싫으니 파란약을 내놓으라고 한다고 하잖아요? 맞습니다 정확히 그거에요. 대중은 죽었다깨도 빨간약을 먹으려 들지 않을 겁니다. 앞으로 수십수백만년이 지나서 인류가 멸망할때가 오더라도 대중은 쉬운걸 좋아한다는 사실은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힘든길과 쉬운길이 있으면 쉬운길로 가려는 사람이 많은게 당연하죠. 물을 보고 넌 왜 위로 올라가지 않고 아래로 떨어지니? 라고 물어보면 그게 대체 무슨 질문인가요? 대중의 속성을 이해하셔야죠. 대중은 어려운것보다 쉬운걸 좋아해요 당연한거에요.
공산주의를 답글 다신 님이 어떻게 해석하고 이해하는지는 중요한게 아닙니다. 공산주의 초창기에 자본론을 보면서 공부한 인텔리들이 있고, 이 인텔리들이 공산주의를 대중에게 퍼뜨리는데 자본론을 들이밀면서 이거 보고 공부하세요 라고 했을까요? 대중적인 운동으로 퍼지기 위해서는 대중에게 어떻게 단순명료하게 전달할지가 중요하다고 제가 몇번이나 강조하지 않습니까?
지젝의 사상이 지금 왜곡되었다라는 게 아닙니다. 지젝의 사상은 아직 주류 사상으로서 어떤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지도 못하고, 그냥 지적유희를 즐기는 이들의 장난감 정도에 불과할 뿐이에요. 제가 말하는 건 지젝의 사상이 주류로서 대중에게 퍼져서 헤게모니를 장악하게 된다면 왜곡은 그 때 부터 시작된다는 거죠. 아직 그럴만한 가치가 없는 사상을 권력의 중심을 꿈꾸는 이들이 뭣하러 왜곡하고 곡해하면서 자기것으로 만들겠습니까? 하지만 지젝의 사상이 정말 주류를 장악하게 된다면 그 때는 이야기가 틀려진다는 겁니다. 특히나 지젝처럼 해석의 여지가 다양한 사상일수록 얼마든지 마음대로 왜곡될 수 있죠. (사실 다시 생각해보면 지젝은 왜곡이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네요. 왜곡할 알맹이 자체가 없는데 뭘 어떻게 왜곡??? 마치 소크라테스가 왜곡되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저 아래 댓글에도 썼지만 지젝을 전적으로 비판하자는 건 아닙니다. 지젝도 어떤 가치가 있다고 봐요. 하지만 지젝은 어떤 열매를 맺는 역할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는 사유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는 것 같아요. 이 토양에서 열매를 맺는 건 다른 이들이겠죠. 지젝은 밭을 갈고 곡식이 여물기를 기다리는 농부의 마음으로 그런 것을 기다리고 있는 걸로 보여져요. 그리고 누군가는 그 토양위에서 열매를 맺을 수도 있겠죠. (근데 그게 지젝으로 인해서 맺어진건지 그냥 지젝없어도 될거였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68혁명이나 쟈스민 혁명 등이 지젝때문에 일어난건 아니니까요)
68혁명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이번 오큐파이 때에도 그저 즐기고 추억하지 말라고 했죠.
저는 지젝의 그 주장이 그게 더 큰 파이를 나누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68혁명이 가져다준 여성 참정권 같은 것만 보더라도 68혁명이 근대와 현대를 나누는 기점이죠.
그리고, 이번 지젝 방한에 대해 말이 많은데, 이번 학술 포럼에 지젝이 자비를 들여 이곳 저곳을 찾은 것과 진짜 방한의 목적이 뭔지 아시는지 궁금하군요.
지젝은 아시아에서 '공산주의의 이념(The Idea of Communism)' 컨퍼런스를 하고 싶었는데 이 컨퍼런스는 매년 바디우와 함께 공동으로 진행되는 이론적인 학술대회이고,
한국이 북한과 중국이라는 과거의 공산주의 지형학적 위치 속에 있기 때문에 더욱 각별하다는 거였습니다.
내년 지젝과 바디우가 그냥 또 소모성 강연을 하러 오는게 아니라는거죠. 왜 대중들을 향한 '쉬운' 강연이 필요했는지 이해가 되실런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지젝은 혁명에서 열매를 맺는 역할이 아닙니다. 사유하는 방법을 대중들에게 가르치며, 혁명의 열매를 대중들이 직접 품을 수 있게 하려는거죠.
그런데 지젝보고 "당신은 알맹이가 없다. 혹은 있다." 하는 소리는 지젝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뭐 한국 철학계에 뒤늦게 라캉 철학이 들어오면서 라캉과 대중 친화적인 철학자 ㅡ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책은 쉽지 않지만 ㅡ 지젝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세력은
예전부터 많았는데 이번 강연 후에 비판 하는 사람들 비판을 읽어보며년 "책이나 읽어 봤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게 함정.
불교는 복잡한 이론을 갖고 있습니다만, 불교가 대중적으로 퍼질 수 있었던 것은 그냥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이었습니다. 그냥 그 염불만 하면 해탈할 수 있다라는 아주 단순화시킨 것 때문이었죠.
기독교도 마찬가지에요....예수천국 불신지옥? 우리가 보기엔 말도 안되게 단순해 보입니다만, 대중은 그렇게 명확한걸 원해요.
하지만 지젝을 이렇게 간단하게 포장할 수 있나요? 그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질문에 질문에 질문을 퍼붓는데??
소크라테스가 왜 대중적으로 퍼지지 못했나요?? 소크라테스는 항상 상아탑에서만 떠돌았죠. 왜냐하면 그는 뭔가를 아주 구체적이고도 단순화시켜서 말하지 않았거든요. 소크라테스의 뜻이 뭔지에 대해서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는 사람이 있나요??
제가 읽고 파악한 바로는 지젝의 이론은 해석의 여지도 상당히 큽니다. 해석의 여지가 상당하다라는 것은 (물론 지젝은 자유주의를 매우 싫어한다고 합니다만, 그래서 지젝이 더욱더 모순적이라는 거에요!) 해석하는 사람의 파워에 따라서 지젝의 뜻조차도 쉽게 왜곡될 수 있고, 지젝의 운동이 대중적으로 퍼진다라고 해도, 지젝의 이름을 빌린 힘있는 놈이 그냥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해서 얼마든지 왜곡해서 쓸 수도 있다는 뜻이죠. 지젝이 죽고 나면 이건 정말 빼도박도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지젝의 나름 비겁하다 싶은 어법이 영 마음에 안든다는 겁니다.
근데, 다른 말씀은 몰라도 '소크라테스가 대중적으로 퍼지지 못했다'는 건 받아들이기 힘드네요. 고대 그리스가 발명해낸 ti esti("~란 무엇인가?")란 질문은 서구적 사고 방식의 핵심이 되었고, 지금 우리가 이렇게 먼 거리에서 논쟁할 수 있는 근간이 되었습니다. 직접적 인과로만 말하자면 소크라테스가 인터넷을 가능케 했다는 건 우스운 얘기지만, 소크라테스적 정신이 인터넷을 발명한 기반이 되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을 듯합니다. 불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직접적으론 구복 신앙이고,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이라는 간단한 논리 덕분에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 수 많은 반박과, 수 많은 고통과 싸워온 심오한 논리들이 존재했기 때문에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겁니다. 어째서 나무에다 고추 걸어놓고 아들 점지해달라는 신앙은 전 세계적인 호응을 받지 못하는 데 반해, 불교나 크리스트교와 같이 고도의 체계를 갖춘 종교는 강력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가를 생각해본다면 간단할 것 같습니다.
소크라테스의 학문적 성과가 후대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제가 좀 간과했던 것 같습니다.
기독교나 불교처럼 직접적이진 않지만, 그의 영향을 적게 평가할 수는 없을 것 같네요. 하지만, 소크라테스도 어떤 사유하는 방법을 가르쳤던 사람이고, 그로 인하여 꽃을 피운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지젝의 영역도 소크라테스의 수준에 그칠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는 사유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남들로 하여금 그 알맹이들을 만들게 하는 사람이 될겁니다.
다시 평가하자면,
지젝과 소크라테스는 토양과도 같은 사람입니다. 열매를 맺는건 다른 이들이죠. 그들 자체가 열매가 될수는 없습니다.
기독교와 불교에 대해서 다시 말씀드리자면, 그들이 어떤 복잡한 이론을 가지고 있지 않다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복잡한 이론은 물론 다른 종교나 철학등과 싸우기 위해서 필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한 것이 아니라는 거죠. 그런 복잡한 이론적 체계를 통해서 갖춰진 것이, 대중에게 퍼져나가기 위해서는 어떤 단순명료함이 필요한 법인데, 불교는 그것이 자비와 나무아미타불이었고, 기독교는 그것이 사랑이나 예수천국 불신지옥 같은 일련의 구호들이라는 거죠. 지나가는 기독교도들한테 기독교 이론에 대해서 물어보시죠. 삼위일체나 신과 성령의 본질, 기독교적인 우주의 기원 같은 것들에 대해서 누가 관심이나 가집니까?? 카발리스트 아니면 별로 관심 안갖습니다 ㅎㅎㅎㅎ
경희대 강연 요약문이라고 하신 글은 전혀 강연과 관계가 없는 글이네요. 직접 강연을 본 사람입니다.
강연은 http://www.khu.ac.kr/webcast/120627_UL_01.html 이 페이지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저도 강연은 보지 못한 상태에서 작성하다 보니 오류가 있었네요.
http://www.ecumenian.com/news/articleView.html?idxno=9002 이쪽에 전문이 올라와 있더군요.
알맹이가 없다는 주장도 나올만하네요. 소크라테스의 대화법과도 비슷한 점이 있는데 자신이 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오답을 찾는 것을 지적하는 방식인 것 같습니다.
지젝이나 마이클 샌델이나 비슷한 점이 있군요. 어떤 사람이 무엇에 대해 판단했다면 그 판단에는 그 사람의 가치나 철학이 개입되어있기 때문에 그 판단을 한 이유에 대해 물으면 그 사람의 가치나 철학을 알 수 있죠.
다만 상황에 따라 다른 철학에서부터 나오는 판단을 했다면 그 사람의 철학은 무언가 일관성이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 시대에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물론 한 사람의 철학이 일관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일 수도 있으나 하필이면 이 시대에 그것이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마도 이 시대에서 기존의 가치관으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들을 접하였기에 사람들은 가치관의 혼란을 느끼게 되고 그래서 새로운 가치관의 확립이 필요하게 된 것 같습니다.
과거에는 선이 무엇인지, 무엇이 정의인지, 무엇이 옳은 것인지 명쾌한(명쾌하다고 느껴진) 세계에서 살았지만 이미 그것들의 기반이 되는 가치들이 변해버렸습니다.
과거 사람들이 생각하던 인, 의, 예, 충, 효... 같은 개념들이 지금도 같은 의미를와 같은 형태를 가진다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