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여러번 예쁜 강아지들을 길러봤었습니다. 가족들때문에 떠나갈 수밖에 없던 아가들도
있었고 불행하게 죽어간 아가들도 있었습니다. 제 곁을 떠나간 어느 아가 하나도 잊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아래 이야기에 깊이 공감을 하고 이 게시판에 퍼옵니다.




        
  우리 가족은 그린벨트에 지은 주택 집에 산 적이 있었다. 그 집은 산기슭에 지은 집인데 울타리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담장이 낮아 도둑을 걱정할 정도였다.
아파트에만 살던 우리는 허전하기도 하고 도둑도 걱정되어 가스총을 구입하는 등 나름대로 방어 태세를 가다듬고 있었다. 그러다가 친구가 가져다준 눈이 둥그렇고 검은 점이 있는 '복돌이'를 기르게 되었다.
복돌이는 손님만 오면 산으로 도망가 숨곤 하다가 어느 날 뱀에 물려 죽었다. 상심한 나머지 집사람이 복돌이를 뒷산에 묻고 눈물을 찔끔찔끔 흘리며 내려오는 것을 본 동네 약국 집 아저씨께서 젖도 안 뗀 갓난 진돗개 강아지 한 마리를 안아다 주었다. 우리는 그 누런 진돗개 이름을 "누렁이"라 이름지어 주었다. 누렁이와 우리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엄마 품에 있던 누렁이는 하루 종일 깽깽거리며 온 동네가 떠나갈 듯이 소리질러 댔다. 엄마를 찾아 골목으로 자꾸 나가려고 하는 바람에 처음에 우리는 누렁이를 끈에 묶어 두었는데 어찌나 안달을 하는지 이 강아지는 무척 성질이 까다로운 강아지라고 생각했다.
하는 수 없이 끈을 풀어주고 네 멋대로 해봐라 하고 놓아주었더니, 예상과는 달리 전혀 말썽을 피우지 않는 것이었다. 이 강아지는 무척 자유를 좋아하는 강아지였다. 누렁이는 커갈수록 점점 신통하게 굴었다. "누렁아, 잔디밭에 똥 싸지 말고 저 밭에 나가 싸"하고 농담 삼아 한 마디 했더니 누렁이는 울안 잔디밭에 변을 보는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누렁이와 함께 키우던 온 몸이 하얗고 예쁘게 생긴 강아지가 있었다. 이 강아지는 어찌나 말썽을 피우는지 온 동네 쓰레기를 모아다가 잔디밭 한 가운데에 늘어놓고 손님이 오면 손님의 신발을 물어 뜯어놓곤 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이 강아지를 성은 지씨, 이름 '저분'이라 지었다. 우리가 '저분아!"하고 부르는 저분이는 신이 나서 달려오곤 했다.
우리 집 아래층에 세들어 사시는 원주민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우리 집에 딸린 꽤 넓은 텃밭을 가꾸고 계셨는데 '저분'께서는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정성껏 가꾸어 놓으신 텃밭을 아무데나 돌아다니며 망쳐놓기가 일쑤였다.
그래서 우리는 아저씨와 아주머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아주머니께서는 어느 날 누렁이를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셨다. 누렁이는 한 번도 텃밭에 들어가지 않고 사람 다니는 길로만 다녔을 뿐만 아니라, 잔디밭에 가느다란 누렁이 전용도로가 한 줄 나 있을 정도로 꼭 자기가 다니는 길로만 다녔기 때문이었다.
또한 누렁이는 우리 집 손님이 오면 금방 알아차려서 손님 대접을 했다. 그러나 낯모르는 사람이 기웃거리거나 지나가면 앞산에 나가 놀다가도 어느 사이에 쏜살같이 집으로 달려와 으르렁대며 목청을 돋우어 짖어대곤 했다.
이처럼 누렁이과 저분이는 개성이 판이하였다. '개'야말로 '개성'이 뚜렷한 동물이다. 우리는 거의 울타리도 없는 이 집에서 도둑 걱정 같은 것은 하지 않고 살 수 있게 되었다.
어느 여름 날 갓 돌이 지난 누렁이는 강아지 여섯 마리를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서 낳았다. 정확히 30분마다 한 마리씩 낳아서 이빨로 태를 끊었다.
6년동안이나 의학을 전공한 산부인과 의사에게도 힘든 분만을 의과대학 문전에도 가보지 못한 한 살이 겨우 된 엄마 강아지가 이렇게 능숙하게 해내다니 신기한 일이 아닌가! 어미는 혓바닥으로 새끼를 정성껏 핥아 깨끗하게 목욕시킨 다음 여섯 마리를 모두 품고 젖을 먹이며 우리에게 자랑스럽게 보여주었다. 다른 사람은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하였다.
누렁이는 새끼의 소변 대변도 일일이 핥아먹었다. 그렇게도 자유를 좋아하던 누렁이가 하루 종일 새끼 곁을 떠나는 법이 없이 새끼가 어떻게 될세라 두 눈을 부릅뜨고 보살피고 있었다. 어미가 이렇게 키운 개를 어찌 괄시할 수 있으랴? 찌는 듯이 더운 어느 여름 날 우리 부부가 집에 돌아와 보니 개장 속에 있던 강아지들이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깜짝 놀라서 "누렁아, 강아지 다 어디 갔어?" 하였더니 누렁이는 태연한 표정으로 정원 제일 구석 그늘진 곳으로 우리를 안내하기에 따라가 보았더니 구덩이 속에 강아지들이 오물오물 담겨 있었다. 누렁이는 강아지와 우리를 번갈아 쳐다보면서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개장에 볕이 들자 어미가 새끼들의 목덜미를 물고 앞발로 판 구덩이로 하나씩 옮겨 놓았던 것이다.
그러던 중 우리는 분당 아파트로 이사가게 되었다. 커다란 개를 아파트에 데려 갈 수가 없어서 아래층에 사시는 아주머니에게 누렁이를 잘 봐달라고 신신당부 드리고 누렁이를 홀로 남겨둔 채 산 마을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
가금 아주머니에게 전화를 해 보면 누렁이가 밥 잘 먹고 잘 있다기에 안심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이사온지 열흘 째 되던 날 새벽이었다. 아주머니가 슬픈 음성으로 "누렁이가 죽었어" 하셨다. 달려가 보니 누렁이는 우리 침실 앞 잔디밭에 평화롭게 잠든 모습으로 누워있었다. 전혀 죽은 것 같이 않은 예쁜 모습이었다.
이웃 아주머니가 말슴하셨다. "영리한 개가 주인이 떠나간지 꼭 열흘 만에 상사병으로 죽는 것을 세 번이나 봤는데 누렁이도 주인을 그리워하다가 죽은 것 같애. 누렁이가 주인이 떠난 골목 끝을 하염없이 쳐다보는 모습이 그렇게 외로워 보이더니만."
함박눈이 소복이 쌓인 어느 겨울 날 울타리 밖 언덕 위에 감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앙상한 가지들과 꼭대기에 달린 주홍빛 연시 두서너 개가 파아란 하늘에 실루엣을 그리고 있었다. 누렁이는 흰 버선을 신은 듯한 발로 백설을 밟고 서서 하늘과 연시를 번갈아 쳐다보면서 뽀오얀 입김을 하늘로 뿜어 올리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평화롭게 잠든 누렁이의 혼이 이 입김처럼 하늘로 날아간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말썽부려 이웃집에 주어 버린 '저분'이가 우리가 그 집 앞을 지나가는 것을 보고 파아란 하늘을 향하여 앞산이 떠나갈 듯이 울부짖던 목소리, 복돌이가 뱀에 물린 후 3일 간 종적을 감추었다가 죽을 힘을 다하여 집에 돌아와 부엌 문을 발로 긁은 후 쓰러져 숨을 거두기 직전 지른 외마디 긴 신음소리가 누렁이의 모습과 겹친다.

이명섭 님은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영문학과 졸업. 동대학교 대학원 영문학 석사. 영국문화원 장학생으로 영국 에딘버러대학 대학원 응용언어학 디플로마. 공군장교로 복무.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미국 버지니어대학 및 하버드대학 방문학자로 연구. 성심여자대학 영문학교수를 역임하였으며, 현재 성균관대학교 영문학 교수 겸 인문대학 학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