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커플이 있었습니다.

아니 커플이라기 보다는 한 남자를 죽는 그 순간까지 혼자 사랑한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저 평범한 동네의 뒷골목에서 우연히 만났습니다.
늦은 시간 동네의 불량배에게 금품이냐? 희롱이냐를 강요당하는 그녀를 발견한 남자.
남자는 그저 자기 집 근처에서 안좋은 일이 생기는 것이 싫어서 도와줬습니다.
남자의 도움을 받아 나쁜 경험을 하지 않게 된 여자는 그 남자를 좋아하기 시작했습니다.

학교와 집 이외에는 그 남자가 가는 곳은 어디라도 나타나서  그 남자를 걱정하고 바라봤습니다.
싸움은 커녕 주먹조차 쥐어본 적도 없으면서 그 남자가 누군가에게 맞고 있으면 어디서 구했는지 야구방망이를 들고
달려와서 도와주었습니다.
가뜩이나 폐기능이 일반인보다 약하면서 그 남자가 멀리서 천천히 다가오면 육상선수같은 속도로 달려갑니다.
매운 것을 먹으면 물을 몇컵씩 먹어야 겨우 안정을 취하는 주제에 그 남자가 먹는 떡볶이를 같이 먹으며 억지로라도 맛이 최고라고 합니다.

그렇게 그녀는 자신을 버리면서까지 한 남자를 사랑했습니다.

그녀는 실수를 했습니다.
남에게는 절대로 알리고 싶지 않은... 부모조차 모르는 남자의 비밀을 그녀는 남자가 다니는 학원에서 공개했습니다.
남자는 학원을 그만두고 학교와 집만 알게 되었씁니다.
가뜩이나 세상과 정을 나누려 하지 않았던 남자는 그 사건으로 그녀를 멀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괴로워했습니다. 미안해했습니다.
그가 학교와 집 이외의 장소로 가는 공통적인 갈림길에서 매일같이 기다렸습니다.
눈이 마주칠때마다 <미안해! 나 용서해줘!>를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남자는 그녀가 싫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가장 큰 고통을 들춰낸 그녀인데도... 밉지 않았습니다.
그는 알지 못했습니다. 그 묘하고 이상한 감정이 사랑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수능이 끝나고 남자는 대학을 가고 여자는 취업의 길을 걸었습니다.
대학교 입학실날 남자는 그녀를 공개적으로 용서했습니다.
<더이상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우리 다시 친구하자!>
그녀는 그와 함께한 지난 모든 시간 중에서 가장 예쁘게 웃었습니다.

그것이 그가 본 그녀의 마지막 미소였습니다.

신입생 환영회.. 그는 알았습니다.
자신이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5년 반만에 자신의 감정이 뭔지를 알게 된 바보같은 그는 고백을 결심합니다.
하지만 지난 날의 냉정함에 너무 미안함을 느껴서 맨정신이 아닌 술의 도움을 얻은 고백을 준비했죠.

그는 그녀의 집으로 갔습니다.
그녀의 집으로 가는 발걸음은 너무도 가벼웠습니다.
그리고 설래였습니다.
그녀에게 고백을 하고 그녀가 허락한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그녀와 함께 스티커 사진도 찍고 드라마도 찍고 싶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그녀의 집으로 달려간 그는 결국 놀랐습니다.
그녀의 집에서 들려오는 아주머니의 울음소리!
그는 놀랐지만 그녀는 아니기에 안심하고 초인종을 눌렀습니다.
잠시후 그녀의 어머니가 나오십니다. 하얀... 너무도 하얀 상복을 입고 나오신 그녀의 어머니

그녀는 죽었습니다.
그에게 용서를 받은 그날의 그 기쁨이 너무 커서 다시 그를 만나기 위해
추억의 장소로 달려가다가 결국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폐기능도 약하고, 위도 약하고, 몸도 약한 그녀는 결국 마음만을 추억의 장소에 남기고
그가 언제 올지는 아무도 모르는 세계로 떠났습니다.

너무 검고 차가운 관에서 그녀는 너무도 차가운 체온으로 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눈을 뜨지 않고 그저 조용히 입도 안벌리고 묵묵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단 한번의 따스한 말도.. 단 한번의 재미있는 농담도 해주지 못한 나쁜 자신을..
제발 일어나서 욕이라도 해주길 빌었습니다.
제발 일어나서 그냥 나 보고 싶어서 장난 심하게 친거라고 말해주길 빌었습니다.
흔들고 또 흔들었습니다.
부르고 또 불렀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고 그저 눈을 감고 있습니다.

나 마지막에서야 겨우 내가 너 사랑하는거 알았다... 미안해..

그 말과 함께 건내준 처음이자 마지막 입맛춤...
세상의 그 어떠한 키스가 이보다 더 차가울 수 있을까요?

그녀가 찍힌 단 한장의 사진도 갖고 있지 않은 그는 울었습니다.
울고 울고 또 웁니다.
매일매일 스스로를 책망하고 비난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꿈에서 그녀를 만났습니다.
너무 기뻐서 이게 현실이라면 다시는 잠들기 싫었습니다.
그녀는 그에게 말합니다.
<난 너 행복해지라고 떠난거야! 이제 울지말고 너무 스스로를 때리지마!>

그는 그녀와의 추억의 장소에 왔습니다.
그리고 이젠 눈물이 아닌 미소로 어딘가에서 몰래 듣고 있을 그녀에게 조용히 말합니다.
<이제 널 여자가 아니라 다시 친구로 볼거야. 후련해졌거든! 거기에선 나같은 망나니 만나지마!>


울지 않기로 마음먹은 두 사람은 마음 속으로 마지막 눈물을 흘립니다.

그렇게 단 한장의 사진도 존재하지 않는 커플의 사랑은 끝이 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