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의 끝

“야, 너 싸이 방명록 봤냐?”

대학생 지현이 원룸에 들어오자마자 룸메이트이자 고교 동창인 두영에게 물었다.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생기발랄한 여대생을 떠올릴 법 했지만, 엄연히 남학생인 지현의, 방명록에서 본 내용 때문에 찡그린 얼굴은 웬만한 남학생들도 피해갈 정도였다.

“아니, 왜.”

두영이 정좌를 한 채 부동의 자세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허변이 소설 썼는데 거기서 우리 이름 나오잖아. 그것도 죽는 역으로 나오더라. 응?” 지현이 벗은 신발을 발로 대충대충 밀며 정리답지 않은 정리를 하며, 마치 요가 같아 보이는 자세를 하고 있는 두영에게 물었다. “그건 그렇고 너 뭐 하는 거냐?”

두영은 천천히 정좌 자세에서 두 팔을 위를 향해 쭉 피기 시작했고, 가만히 몸을 움직이지 않고 있던 두영의 팔에 앉아있던 작은 날벌레가 자리를 양보했다.

“심신의 수련이지. 영혼의 훈련이라고 불러줘.”

“놀고 앉았네, 쯧쯧,” 지현은 질렸다는 듯 혀를 내둘렀다. “얼마 전에 교양 시험 망쳤다더니 나사가 하나 빠졌구나?” 지현은 가방을 책상 위에 내려놓고 노트북을 켰다.

“아냐, 보통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영과 혼으로 나눠져 흩어지게 되는데, 수행을 통해서 영혼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하더라, 월간 미스터리에서.”

“아, 그 잡지? 허변이 일하는 데가 거기 아닌가? 대학도 안 가고. 어?”

검색 엔진에서 뉴스를 훑어보던 지현이 무언가에 놀란듯 감탄사를 내뱉었다. 두영은 여전히 큰 반응을 보이지 않고 허리를 좌우로 돌리며 물었다.

“무슨 일이야?”

“괴 바이러스 발생? 우리 동네잖아, 여기?”

“왜, 또 조류 독감이라도 발생했나 보지?”

“기사는 그게 아닌데?”

지현이 스크롤을 내리며 말했다.

“미지의 경로를 통해… 사람에게 전염되는…? 대피… 요망?”

지현의 목이 경직되며 목소리가 점점 기어들어가기 시작할 때즈음, 바깥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방공 훈련 때에나 들을 수 있는, 낡은 느낌의 사이렌 소리였다.

“무슨 일이지?”

학생 시절 훈련 받을 때는 장난으로 받아치던 사이렌 소리였지만, 일상에서 들을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게 들리자 무슨 일에든 관심을 끄고 자기 할 일 하던 두영조차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영이 창문의 잠금을 풀어 열어 보려하는 와중에 지현은 문을 열고 방 밖으로 나가 보았다.

두영이 본 창 밖 풍경은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회색 도로, 회색 건물, 회색 하늘. 다른 게 있다면 귀를 따갑게 하는 사이렌 소리와, 이상하리만치 힘없이 걸어다녀 괴기하게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날도 덥지 않은데 저 사람들은 더위 먹은 건가, 라고 두영은 생각하고 창문을 닫았다.

“야, 차지, 무슨 일이야, 밖에?”

두영은 지현을 불렀다. 하지만 어째선지 지현의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벌써 원룸 건물 밖으로 나간 건가 생각한 두영은 방문으로 향했다. 그리고 방밖으로 얼굴을 내미는 순간, 두영은 그의 바로 앞에서 갑작스레 등장한 검은 인영에 의해 정신을 잃게 되었다.



‘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전혀 기억나지 않아.

조심히 눈을 떠 봤지만, 그조차 내 힘에 의한 것인지 명료하지 않았다. 몽롱한 기분에서 몸에서 모든 힘을 풀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지만, 그마저도 내 의지인지 어떤지 알 수 없었다. 마치 신체가 없이 허공에 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몸 어디에도 힘이 들어가지 않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당연한 호흡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말 그대로 신체가 없이 떠 있는 것 같았다.

이윽고 내 시선이 주변을 둘러보듯 움직이기 시작했고, 물론 그마저도 내 의지는 아니었지만, 서서히 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는 내가 단순히 떠 있는 게 아니라, 떠 다니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아마 이게 유체 이탈이라는 거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 건 신체가 무사한 상태에서도, 가령 자고 있다든가, 일어난다고 하니까 말이다.

기억이 끊기기 전에 나는 그럼 뭐 하고 있던 거지? 자고 있었나?

천천히 기억을 더듬어 보자 사이렌 소리가 떠 올랐다. 사이렌 소리를 기억해내자 다음으로 그 전에 있었던, 차지가 말해 준 기사가 떠올랐다.

분명 괴 바이러스라고 했지? 세균 병기 같은 거였던 걸까? 어쩌면 북한의 공작이었을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잘은 몰랐지만, 도시 한 가운데에서 세균 혹은 바이러스를 살포함으로써 사람들을 패닉 상태에 빠뜨리는 것은 분명 끌리는 실험 방법이자 전략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으으으으.”

‘윽, 기분 나쁜 소리다.

분명 기계의 소리 같지는 않았다. 무언가 잘 모르는 짐승의 소리인 것 같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아는 누나랑 동물원에 갔을 때 원숭이인지 뭔지가 그런 그르렁 소리를 냈던 것 같았다. 어쩌면 도시가 패닉 상태에 빠지면서 조금 멀리에 있을지도 모르는 동물원에서 원숭이류 동물이 탈출한 것일지도 몰랐다. 어떤 식으로든 그것은 사람의 소리는 아니었고, 정상적인 사람의 소리든 아픈 사람의 소리든, 어떻게 들어보면 동물원에서 들은 짐승 소리 같기도 했고, 어떻게 들어보면 기계가 과열돼 가열차게, 들리는 소리 자체는 분명 느릿하면서 늘어졌지만, 팬을 돌리는 소리 같기도 했다.’

“으으으으.”

‘그 소리가 어디서 들려오는 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도 그럴게 지금의 내 시선은 분명 내 의지가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유체 이탈이 이렇게 불편하고 기분 나쁜 거라면, 두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는 않았다.

떠 다니는 내 시선은 원룸 건물의 복도를 이리저리 멍청히 둘러 보다가 건물 안쪽의 어두운 방향으로 느릿느릿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곧 복도에 있는 작은 창 밖이, 크기를 어림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랄 듯 보이는, 짙은 먹구름에 의해 어두워졌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예의 “으으으으” 소리와 함께 시선이 건물의 문으로 향했다. 시선이 문 바깥에 도착했을 때 ‘절퍽’ 소리가 났다. 나는 그동안 내 시선만이 무기력하게 허공에 떠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 시선의 주인은 따로 있는 듯 했다.

시선이 여전히 천천히 움직이며 우측으로 방향을 돌렸을 때, 내 시선, 혹은 실제 주인이 따로 있을 시선은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아래를 향했다. 나는 구역질을 할 것 같은 기분을 느꼈지만, 시선을 제외한 내 모든 감각이 나와는 무관해, 나는 실제로 아무 것도 배출할 수 없었다. 그곳에 있는 것은 작은 동물에서 나왔을 거라고 보기는 힘들 정도의 엄청난 양의 혈흔이었다. 혈흔이라기보다 혈액 자체라고 불러야 할 정도로 그것은, 물론 내 의지는 허공에 붕 떠 있는만큼 실제로 만지진 못하지만, 만지면 아직 온기가 느껴질 것 같이 보이기까지 했다.

처음에는 피바다 아래에 잠겨 빗줄기를 맞고 있는 물건이 뭔지 잘 알아볼 수 없었지만, 곧 그게 뼈의 잔해와 살점의 일부라는 것, 그리고 사람의 옷의 일부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옷의 디자인이 눈에 익었다. 오늘 잠깐밖에 보지 못했지만 분명 차지도 오늘 같은 디자인의 옷을 입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것을 보자 내가 기억을 잃기 전에 왜 차지가 대답하지 않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세균 혹은 바이러스 병기는 아무래도 신체를 어떤 방법으로든 녹여버리는 걸지도 몰랐다. 잔해가 조각조각으로 나뉘어져 흩어져 있는 것을 보자 어쩌면 괴 바이러스는 신체를 폭발시키는 물건일지도 몰랐다.

나도 이렇게 죽은 걸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상태를 확인할 수 없다는 사실이 소름끼쳤다. 내가 어떻게 됐는지 알고 싶었다. 사실 죽었을 거라는 생각은 어렴풋이 들었지만, 아마 죽은 게 아니라면 이렇게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는 상태로는 있을 수 없을 것일 테니까, 그래도 내가 죽은 모습을 보지 않고서는 납득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시선은 다른 데로 옮겨져, 빗줄기를 무시하며 천천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한 자전거가 세우는 곳이 아닌 입구 앞에 세워져 있는 천원샵 앞에 도착했을 때, 나는 건물 안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살아있는 사람인 걸까하는 기대가 부풀어 올랐다. 어쩌면 바이러스가 퍼진 곳에서, 목소리를 낼 수는 없었지만 사람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시선은 내가 희망해서는 아니겠지만, 내가 희망한 것과 같이 천원샵으로 향했다. 하지만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시선, 그리고 시선의 주인은 세워져 있는 자전거를 무시하고 무작정 앞으로 가 자전거를 넘어뜨렸다.

‘쨍그랑’ 소리를 내며 자전거 손잡이의 거울이 깨졌다. 산산조각이 난 오른쪽 손잡이 거울과는 달리, 왼쪽 손잡이 거울은 그냥 분리되듯 바닥에 떨어졌다. 부착 부분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거울이 위를 향했다. 시선은 마치 소리에 반응하듯 자연스레 바닥을 향했고, 나는 거울에 비치는 내 시선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잖아?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몸에 힘이 안 들어가는 것, 시각과 청각을 제외하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것, 몸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움직이는 것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목과 어깨에 난 상처와 죽은 생선마냥 힘없는 동공을 마주하기 전까지는.’

“뭐야? 리코쨔아아아아아아앙!”

‘건물 안에서 누군가 알 수 없는 소리를 외치는 게 들려왔지만, 나는 내 상태에 관해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져 살아있는 ‘사람’에 관해서 생각할 수 없었다.

나는 분명 이미 예상했던 대로 죽어있었던 거였다. 하지만 내 정신은 어떤 이유에서건 살아 몸 안에 갇혀 있게 됐고, 몸은 괴 바이러스에 의해서인지 어째서인지 살아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내 의지와는 상관 없이.’

“이 자식!”

‘앞에 누가 나타나 나를 향해 외쳤다.’

“더러운 3D XY염색체 주제에 감히 우리 완소 리코쨩을 더럽혀? 유루사나이!”

‘무슨 소리야? 겨우 살아있는 사람을 만났는데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한국어야? 리코쨩이라니? 자전거가 엎어질 때 진흙탕에 떨어진 인형 말하는 건가? 여자 아이껀 줄 알았는데 이 사람이 주인이었던 건가?

나는 무슨 소리인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구해달라고 소리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여전히 내 몸은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애초에 감각조차 느껴지지 않으니 당연한 것일 거였다.’

“으으으으.”

‘이번에도 그 소리다. 이제야 이해할 수 있지만, 분명 이 소리는 분명 내 목에서 나오는 소리일 것이었다. 살아있는 시체가 된 내 목에서 나오는 소리 말이다.’

“분명 난 잉여인간이었을지도 몰라. 하지만 내 여자에게는 따뜻하다고! 리코쨩을 더럽힌 죄는 결코 용서받지 못한다! 그녀를 지켜보이고 말겠어!”

‘그 내 나이대의 남자가 인형을 바라보았다.’

“기다려줘, 리코쨩. 곧 구해줄게.”

‘그러더니 “내 마안은 네 존재를 부정한다!”라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으며 빗자루에 식칼을 이은 위협적인 무기를 들이댔다. 나는 그 남자가 어떤 이상한 생각을 품고 있건 상관 없이 일단 목숨을 구걸하고 싶었지만, 내 몸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느릿한 속도로 무기를 든 남자에게 덤벼 들었다. 남자는 나에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무기를 찔러넣었고, 창에 꿰차인 나는 앞으로 움직일 수 없었다. 이미 죽은 몸이었고, 물리적인 아픔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마음이 너무나 아파왔다.

눈을 향해 식칼 끝이 날라올 때는 심장이 멎을 것만 같았지만, 정신을 잃는 것도 마음처럼 쉽지는 않았다. 왼쪽 안구가 파괴되면서 시야의 반절이 검어졌고, 시야의 일부를 잃게 되자 그제사 죽임이 실제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친구도 죽고, 나도 내가 죽어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겨우 살아있는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은 나를 죽이고 있다. 싫어, 죽이지 말아줘.

마음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지만 내 몸은 그렇지 않았다. 내 몸은 괴악스런 소리를 지르며 계속 남자를 향해 팔을 휘두르고 있었고, 남자도 나를 향해 무기를 쉬지 않고 찔러대고 있었다.

싫어, 싫어, 살고 싶어!

나는 사람에게 죽임을 당하고 있었다. 나도 사람이고, 당연히 살고 싶다. 제발 살려달라고 비명을 지를 수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마음 안에서의 얘기였다. 내 비명이 실제로 그에게 들릴 일은 없을 것이었다. 내 마음은 잿빛 식칼로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찔러 마치 너덜날 것만 같았다.

이윽고 허공에 떠 있던 것처럼 느껴지던 시선이 수직으로 하강했다. 볼 수는 없었지만 아마 신체에 데미지가 축적되면서 결국 힘을 잃어 쓰러지기 시작하는 것일 것이었다. 그럼에도 남자는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제발… 살려줘…….

같은 사람으로써 남자에게 마음 속으로 애원했지만 그가 들어줄 리 없었다.

…그는 인간인걸.

결국 신체가 완전히 너부러져 옆으로 엎어졌다. 그제사 거친 숨을 연방 들이키며 남자는 무기를 거두었다. 남자는 무기를 바로 옆에 눕혀두고 무릎을 꿇고 앉아 인형에게 양 손을 내밀었다. 그는 “리코쨩, 무서웠지? 앞으로도 내가 지켜줄게. 아아, 진흙 때문에 더러워졌잖아. 이런 비오는 날에 밖에 데려 나와서 미안……. 그래도 리코쨩과는 헤어지고 싶지 않은 걸”이라고 젖은 흙 때문에 지저분해진 인형에 볼을 부비며 말했다. 그가 인형에 볼을 부빌 때, 인형의 눈 파트와 내 시선이 마주쳤다. 분명 살아있는 인간인 저 남자를 대했을 때도 느끼지 못했던 시선의 교환을 어째선지 무기물인 인형에게서 느낄 수 있었다.

비는 그칠지 몰랐고, 시선의 바로 위를 가로지르며 빗물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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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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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ento te hominem es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