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소녀에게 한통의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소년이었습니다. '저기.. 전해 드릴게 있어요. 돌아가신

아버님과 관련된 물건이예요' '예? 아버지가요?? 아버지가 왜 그 쪽한테..' '일단 지금 바로 병원으로 와

보세요' 늦은 밤. 소녀는 병원을 찾아갔습니다. 그는 로비에 나와 있었습니다. 그녀가 다가가자 그는 커다란

박스를 하나 건네주며 말했습니다. '집에 가서 꼭 열어 보세요. 아버님의 유언하고 관련된 물건이니까...'

소녀는 박스 안의 물건이 뭔지 궁금했지만 일단 소년에게 수술 꼭 잘 될 거라고 격려해주며 집으로 갔습니다.

소녀는 집에 도착하자 마자 박스를 열어 봤습니다. 안에는 수많은 테잎이 들어 있었고, 그 위에는 편지 한

통이 있었습니다. '내일 아침에 병원에 와 보세요. 그리고 제가 수술을 하러 들어가면 병원 로비에서 테잎을

하나씩 넣어 보세요. 아버님도 그렇게 해 주시길 바라실 거예요' 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 되었습니다.


소녀는 테잎이 든 박스를 들고 병원에 갔습니다. 조금 늦게 도착해 소년은 이미 수술실에 들어가고 없었습니다.

조금은 아쉬워 하며 그 소년의 부탁대로 1층 로비에 있는 커다란 TV에 있는 비디오에 첫번째 테잎을

넣었습니다. 화면에 그 소년이 나와서 말했습니다. '301호실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마지막 소원은 외국에 가

있는 아들을 한번 보는 거 였죠? 그래서 제가 연락을 해 봤어요. 아드님은 할아버지가 편찮은지 알면서도

오고 가는 비행기표조차 구할 수 없어서 늘 마음만 아파 했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준비했어요.

아마 할아버지가 이 화면을 보고 있을 때쯤이면 아드님이 찾아 올 거예요' 지나가다 이 화면을 본 그

할아버지는 설마.. 하는 생각에 병원 밖을 쳐다 보았습니다. 그런데... 마치.. 꿈만 같았습니다. 그리도

보고 싶어 하던 아들이 찾아 온 겁니다.


'아버지.. 죄송합니다.. 늘 외국서 잘 산다고만 연락 드렸지.. 사실 사업에 실패해서.. 죄송합니다..'

'됐어.. 이렇게라도 얼굴 볼 수 있는 게 어디야.. 고맙다.. 와줘서..' 서로를 껴안고 우는 두 부자를 보던

소녀는 화면이 끝나자, 두번째 테잎을 넣었습니다. 이번에도 소년이 나와서 말했습니다.

'205호 장난꾸러기는 곰인형을 갖는 게 소원이었지? 처음에 왜 곰인형을 사주지 않을까 하고 궁금해서

엄마한테 물어보니, 면역력이 낮아 조금만 병균에 노출되도 위험해서.. 어쩔 수 없이 못 사줬다고 하더라구...

그래서 어떻게 할까 하는 생각에 곰인형 만드는 공장에 전화해서 사정을 말해보니, 공장장님께서 사정이

딱해서 특별히 항균 곰인형을 하나 만들어 주셨어. 아마 지금쯤 공장장님이 직접 들고 오실거야'

말이 끝나자 마자 포근한 인상의 아저씨가 커다란 곰인형을 들고 병실로 들어갔습니다. 곰인형을 받아 든

아이의 모습은 정말로 행복해 보였습니다. 옆에서 바라보던 아이의 엄마는 눈물을 보이며 그저 감사하다는

말 밖에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세번째 테잎, 네번째 테잎... 하나 하나 넣어 갈 때마다 병원에 있는

환자들의 소원이 이뤄지고, 병원은 사람들의 환호와 기쁨, 행복으로 가득차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테잎만 남았습니다.


소녀는 마지막 테잎을 넣었습니다. 역시나 소년이 나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마 이 테잎을 누군가 보고 있다면, 전 수술을 하고 있겠죠.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이렇게 여러분들의 소원을 준비한 건, 죽은 아저씨 때문이었습니다. 아저씨의 마지막 소원이었죠.

여러분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게...' 시끄러웠던 병원이 순간 조용해지고 사람들은 모두 침묵하며 화면을

바라 보고 있었다. '여러분들의 소원을 하나 하나 이뤄 주기 위해 준비해 가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죽어가는 이 순간에도 소원을 가지고,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거 말입니다'

'전 지금까지 소원도 희망도 없이 마치 죽은 것처럼 살아 왔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참 바보 같았네요.

그 누구도 이 세상에 희망을 가지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이미 늦은걸까요.

전 지금 생사의 기로에 놓여 있습니다. 아마 지금이 제 마지막 시간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아직도 전

제가 죽기 전에 이루고 싶은 단 하나의 소원이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제가 마지막으로

이루고 싶은 소원은...' 갑자기 화면이 지직 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소년이 뭐라고 말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화면이 지직 거리면서 잘 들리지 않았습니다. 옆에 있던 아저씨는 TV를 몇 번 손으로 쳐 보기도 했지만 소용

없었습니다. 그 시간 수술실. 수술실 역시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소년의 심장박동이 서서히 멈추기

시작한 것입니다. 화면의 지직거림과 소년의 심장박동은 마치 마법이라도 걸린 것처럼 같이 흔들거렸습니다.

그렇게 몇번인가 흔들거리더니... 이내 화면은 지직거리며 완전히 나가 버렸고... 수술실의 심장박동기 역시...

멈추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고장난 듯 지직거리는 화면을 보고 필연적으로 직감했습니다.. 소년의 심장이 멈췄다는 걸...

병원엔 정적이 감돌았습니다.. 화면을 바라보던 사람들의 가슴과 눈에는 뜨거운 것이 솟구치는 것만 같았습니다.

말없이 화면을 보던 소녀가 TV로 다가갔습니다. 그러곤 주저앉아 조용히 눈물을 흘렸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울다 말했습니다.


'내 아버지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왜 다른 사람들의 소원은 들어 주면서 내 소원은 들어주질 않았니..'

'난 늘 아버지가 내 곁을 떠나지 않았으면 하는 게 소원이었어... 그런데 아버진 내 소원을 이뤄주지 않고

가시더라구... 그래서.. 그래서 너만은 떠나지 않기를 바랬었는데.. 너마저도.. 너마저도 떠나면 어떡해...

왜 다른 사람들 소원은 다 들어주면서 내 소원은 들어주지 않는거냐고!' 그녀는 울부짓으며 TV 화면을

손으로 마구 두들겼다. '죽지마.. 제발 죽지마.. 그게 내 소원이야.. 제발.. 제발 그러니까 죽지마..'


한참을 소리 지르고 울먹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지직 거리던 화면이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멈췄던 심장박동기 역시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화면만 쳐다 보았습니다.


소녀는 살아나는 화면을, 눈물을 멈추고 바라 보았습니다.


다시 살아 난 화면엔 소년이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소년은 말했습니다.



'미안, 네 소원만 잊고 있어서. 방금 어딘가에서 무언가 환한 빛에 쌓인 네 아버지를 만났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미안했다고 하시더라구. 그래서 마지막으로 네 소원만은 꼭 이뤄 주고 싶다고 해서 이렇게 날 다시

보내 주셨어.. 고마워... 아직도 난 사실 내 마지막 소원이 뭔지 모르겠어. 하지만 그 걸 깨닫기 위해서라도

꼭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 내게도 희망이 생긴거지. 이제 내게도 살아갈 이유가 생긴거야'




'고마워...'











소년은 기적적으로 살아났고, 병은 완치될 수 있었다. 다만, 마지막 테잎에서 했던 말은 전혀 기억하지

못했고.. 테잎 역시 다시 틀어 보니 아무 내용도 남아 있지 않았다. 소년의 이야기는 소녀와 병원 사람들의

마음 속에만 남아 있었다.






이게 제 꿈의 끝입니다. 지겨웠죠? 쓰고 나니까 다음날 아침이 되네요. 이건 뭐 ㅎㅎ

어쨋건 제가 그런 일을 하게 된 이유입니다. 이 이야기는 두고두고 잊지 않고 간간히 주윗 사람들에게

해주는 얘기입니다. 때때로 지겹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너무 좋다고 소설이나 영화로 만들면 좋겠다는

사람도 많았네요. 기회가 된다면 꼭 해보고 싶습니다. 괜찮았나요? 이 얘기 해주면 사람들이 지어낸거

아니냐고, 혹은 어디서 주워 온 얘기 아니냐고 묻는데, 그런거 아니구요. 90%는 꿈에서 꾼 내용이고

나머진 꿈이다 보니 앞 뒤가 안 맞아서 조금 수정하고 보충 한 겁니다. 말 그대로 꿈얘기예요.


혹시라도 그럴리 없겠지만, 이번엔 어디 퍼가시거나 그러지 마세요. 그냥. 그냥 하고 싶은 얘기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