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기사에도 힛갤에도 없지만, 사실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그냥 주윗 사람들 몇 명만 알고 있는, 그런 이유 말입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의 어느날이었습니다.

그날. 아주 슬프고 아름다운 꿈을 꿨습니다.

너무 슬퍼서 꿈에서 깨어나 학교 갈 생각도 않고, 그냥 계속 울었습니다.

어머니는 제게 말했죠. 왜 갑자기 자다 일어나서 울고 있냐고.

전 이렇게 대답했죠. '엄마 나 진짜 아름다운 꿈을 꿨어'라고.

허무맹랑한 소리 마라고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정말 한참이나 울었습니다.

한창 감수성이 풍부할 나이라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생각해 봐도 정말 아름다운 꿈이었습니다.

꿈 얘기라 조금은 앞 뒤도 안 맞고, 여기 저기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한번 들어 보시겠습니까?

아마 엄청 길고 지겨울 겁니다. 읽어 보실 분은 한번 읽어 보시고, 아니면 그냥 내리셔도 좋아요.

하지만, 제가 왜 그런 뻘짓을 했는지 알고 싶으시면 시간 내셔서 한번 읽어 보셔도 좋을 듯 하네요.





꿈 속의 소년은 이름 모를 난치병에 걸려 병원에서 하루하루를 의미없이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가여운 시한부 환자였습니다. 그 소년이 있는 그 병원에는 모두 그와 같은 처지에 있는 환자들 밖에

없었죠. 생명이 다해가는 이들을 위한 곳이었습니다. 하루에도 몇 명 씩 얼마 남지 않은 삶을 마무리

짓기 위해 이 병원을 찾아오는 환자들이 있었고, 또 하루에도 몇 명 씩 조용히 삶을 마감하기도 하는,

그런 곳 말입니다.


소년의 병실에는 여러 사람들이 있었지만 유독 눈에 띄는 아저씨가 있었습니다. 그 아저씨는 소년과

같은 병에 걸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결국 입원하게 되었는데, 그 역시 남은 시간이 얼마 없었죠.

그에게는 오래전 사고로 죽은 아내가 남겨준 마지막 선물인 어린 딸아이와 젊은 시절 영화 감독의

꿈을 키워줬던 낡은 카메라 하나가 삶의 전부였습니다. 비록 아내의 죽음과 딸아이의 부양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영화 감독의 꿈은 포기했지만, 그 카메라만은 절대 손에서 놓는 일이 없었습니다.


때론 왕진 온 의사나 간호사를 찍기도 하고, 병실 환자들의 일상을 찍기도 하며 잃어버린 영화 감독의

꿈을 되찾아 가고 있었죠. 하지만 소년은 그런 그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어차피 남은 시간이 얼마

없는데, 영화 감독이니 꿈이니 하는 것들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라고 말이죠. 소년에게 삶이니 꿈이니

하는 건 아무 의미 없는 것이니까요.


그러던 어느날. 그 아저씨는 수술을 결정합니다. 난치병이긴 하지만, 수술만 성공한다면 어느정도 완치되

목숨을 이어 나갈 수 있는 병이었습니다. 하지만 수술의 성공률이 너무 낮아 대부분 수술을 꺼렸던 겁니다.

소년 역시 같은 병에 걸려 있는 상황이지만, 단 한번도 수술을 할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어차피 죽게 될건데 그런 모험 따위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죠.


아저씨의 수술 날짜는 2주 뒤로 결정됐습니다. 주윗 사람들은 그 소식을 듣고 그에게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거라고 격려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수술이 성공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수술이 결정된 날부터 아저씨는 그의 낡은 카메라를 들고 병원 안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각 병실은 물론 병원 로비, 복도, 화장실까지도 돌아다니면서 한 사람, 한 사람을 잡고 뭔가를 찍는 겁니다.


소년은 그걸 보고 '저 양반은 죽을 날 며칠 남았다고 저러고 다니는지 모르겠네'라며 속으로 빈정댔습니다.

그런데 왠걸? 그 아저씨가 이번엔 자기에게 다가와서는 묻는 겁니다. '자네 살아있는 동안에 마지막으로

이루고 싶은 소원 한가지 없나?'라고 말입니다. 소년은 단호히 말했습니다. '그딴거 없어요.'라고...

소년은 그때까지도 아저씨의 그런 행동이 자신에게, 그리고 병원 사람들에게 얼마나 소중한 의미가 될지

몰랐습니다. 그렇게 아저씨의 바쁜 2주가 지나가고 수술 전날 밤이 되었습니다.


소년은 여느때처럼 병실 침대에 누워 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왠일인지 누군가가 그를 깨우는 겁니다.

일어나 보니 대뜸 그 아저씨가 잠깐 로비로 나와 보라기에 따라 나갔습니다. 따라 나가 보니 아저씨가

대뜸 커다란 박스 하나를 건네 주는 겁니다. 소년은 엉겹결에 일단 받아 들었습니다. 꽤 크고 묵직한

박스였습니다. 그러곤 아저씨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만약 내가 내일 수술을 해서 성공한다면 이걸 다시 돌려주고, 만약... 만약 실패하면.. 한번 열어봐. 꼭'

이 한마디를 남기고 아저씨는 슬그머니 다시 병실로 들어 갔습니다. 소년은 어안이 벙벙했지만, 일단

박스를 병실로 들고 들어가 한 구석에 놔두고 다시 잠을 청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이 밝았습니다.


아저씨는 다른 환자들의 격려를 받으며 수술실로 들어갔고, 수술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몇 시간이

지났을까... 소년의 귀에 들어 온 건 아저씨의 딸, 소녀의 울음소리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아저씨는 소녀를

두고 먼저 떠난 것이었습니다. 병실엔 정적이 감돌았습니다. 아무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습니다.

소년은 생각했습니다. 왜 구지 스스로 저런 모험을 했을까... 과연 그런 모험을 할 만큼 삶이 의미가 있는

걸까.. 라고...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소녀는 말없이 찾아와 아버지의 짐을 챙겨 갔습니다.


며칠이 지난 밤이었습니다. 그날 따라 소년은 왠일인지 잠이 오질 않았습니다. 침대에서 이리 저리 뒤척이다

눈을 떠보니 병식 한 구석에 놓여 있는 박스 하나가 보였습니다. 아저씨가 죽기 전에 건네줬던 그 박스입니다.

소년은 그 박스의 존재조차 잊고 있었습니다. 문뜩 그 박스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궁금해서 들고 로비로

나가 뜯어 봤습니다. 안에는 하나하나 번호가 적힌, 무수히 많은 비디오 테잎이 들어 있었습니다.

이게 뭔가 해서 소년은 로비 TV를 켜고, 비디오에 1번이 새겨져 있는 테잎을 넣었습니다. 재생 버튼을

누르자, 화면엔 옆 병실에 있는 한 할아버지 한 분의 얼굴이 비쳤습니다. 그리고 죽은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이루고 싶은 소원이 무엇이세요?'라고

그 물음에 할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음.. 나한테 아들이 하나 있어. 근데 그 녀석이 지금 저 어디지?

어쨋건 그 뭐 어디서 돈 번다고 가 있어서 한국에 자주 못 와. 나 이렇게 병 나고 한번도 안 왔는걸... 음...

내 마지막 소원은, 그 녀석 얼굴 한번 보고 죽는거라네 허허'

쓴웃음을 짓던 할아버지의 얼굴은 이내 사라졌습니다. 소년은 이번엔 2번 테잎을 넣어 봤습니다. 그러니

이번엔 또 다른 병실에 있는 소아 백혈병에 걸린 어린 여자애가 나오는 겁니다. 이번에도 아저씨의 목소리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꼬마야. 넌 혹시라도 이 세상을 떠나게 되다면, 그 전에 꼭 이루고 싶은 소원 하나가

있니?'라고. 그 물음에 꼬마애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전 곰인형이 무지무지 갖고 싶은데, 엄마도 아빠도 절대 사주질 않아요. 다른 애들은 다 곰인형 하나씩

가지고 있는데, 왜 전 안 되는 걸까요? 곰인형이 너무 갖고 싶어요. 제발... 제발... 그게 제 소원이예요...'

... 꼬마애는 울먹이며 그렇게 말했습니다.

세번째 테잎에 나온 한 청년은 '사실 병원에 입원하기 전에 사랑하던 사람이 있었어요. 참 사랑했는데..

제가 병에 걸렸고, 얼마 살지 못한다는 걸 알고... 더 큰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아서... 싫어졌단 핑계로

헤어졌어요... 그녀에게 상처가 됐겠죠... 제 소원이 하나 있다면.. 그녀에게 진실을 말해주는 거예요.

절대 그런 게 아니라고.. 어쩔 수 없이 그런 거라고.. 그 오해를 풀어주고 싶어요.. 죽기 전에..' 라고

말하며.. 애써 미소지었습니다.

그렇게 네번째 다섯번째 테잎에도 모두 그 병원에 있는 환자들이 죽기전에 마지막으로 이루고 싶은

소원이 담겨 있었습니다. 하나 하나 모든 테잎을 본 소년은 마지막 테잎을 넣었습니다. 마지막 테잎을

넣자 화면에 죽은 아저씨가 나왔선 말했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이 테잎을 보고 있다면, 난 이미 이 세상에 없을 것이고. 이 테잎을 보고 있는 사람은

내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사람일 겁니다.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남은 시간 동안

내가 마지막으로 이루고 싶은 소원이 뭔가 하고 생각해 봤습니다. 쉽게 떠오르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고민

끝에 다른 사람들의 소원을 하나씩 이뤄 줘 보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다 보면 뭐, 제 소원도 떠오를 거

같더라구요. 그래서 하나씩 하나씩 준비했는데.. 결국 제게 주어진 시간이 다 되었나 봅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제 일을 이어갈 사람을 찾았습니다. 그게 바로 당신입니다. 당신 역시 지금 마지막으로

이루고 싶은 소원이 뭔지 모르겠죠?  저도 당신과 같았습니다. 그렇다면 한번 해보시는 게 어떻겠어요?

다른 사람들의 소원을 이뤄 주는 겁니다. 그러다 보면 자연히 당신의 소원도 알 수 있게 되겠죠. 박스 안을

보세요. 제가 지금까지 딸아이 몰래 모아놓은 돈 몇 푼이 들어 있는 통장입니다. 병이 다 낳으면 딸아이랑

여행 가려고 모아 놨던 돈인데... 이제 못 가게 됐으니... 당신이 쓰도록 하세요. 아마 이 돈이면 사람들

소원 하나 정도씩은 이뤄 줄 수 있을 거예요... 꼭 부탁드립니다. 제가 마무리 짓지 못한 일을.. 마무리 해

주세요.. 아참, 그리고 옆에 있는 제 낡은 카메라, 아마 쓸모가 있을 겁니다'... 아저씨의 얼굴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사라져 갔습니다. 소년은 박스 구석에서 통장을 꺼내 열어 보니 적지 않은 금액이었습니다.


소년은 '죽으면서까지 구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이렇게 하고 싶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난 과연... 죽기 전에 이루고 싶은 소원이 뭘까?' 하지만 쉽게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하루하루를 마치 죽은 것처럼 살아 왔던 그였다. 그런 그에게 소원 따위가 있을리가 만무했습니다.

소년은 꺼내놨던 테잎을 모두 박스에 넣고는 다시 병실 한 구석에 쳐박아 놓고 잠을 청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습니다.. 며칠 동안 소년은 고민했습니다. 과연 그 아저씨가 남긴 부탁은 의미가 있는 것일까... 내가

왜 해야 하지? 여러 생각이 오가다.. 어느 순간 생각했습니다.

'어차피 하루하루 의미 없게 살아가고 있는데, 하나 마나 똑같은 걸. 그럼 그냥 해보자. 죽은 사람 부탁이니까'

라고. 그 날부터 소년은 모든 이들의 소원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수술을 받기로 결정했습니다.

아저씨와 마찬가지로 2주 뒤에 수술 받기로..


그 날부터 소년은 바빠졌습니다. 카메라를 들고 여기 저기 뛰어다니기도 하고, 하루 종일 전화를 붙들고

있기도 했습니다. 늘 죽은 것처럼 잠만 자던 소년이 갑자기 달라지니 병원 사람들은 의야해 하기도 했지만,

수술을 결정해서 그런게 아닌가 하고 생각하곤 말았습니다. 그렇게 소년의 바쁜 2주는 지나가고 수술 전 날

밤이 됐습니다.







너무 길어서 두 편으로 나눴네요. 뒷 편도 바로 올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