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아고라도 올렸습니다. -_-; 이번에는 좀 덜 얻어맞으려나요?)

버락 오바마에 대한 관심으로 요새 미국 대선에 대한 자료들을 일부러 찾아서 읽고, 듣고 있다. 지난 1년간 읽지도 않고 폐지통에 던져버리던 영자신문의 미국 대선기사를 샅샅이 읽고, 오바마와 힐러리 유세 사이트, 그리고 유튜브에 올라온 30초짜리 TV 광고들을 전부 둘러보았다. 아. 유튜브에 보면, 2004년엔가 오바마가 자기 아버지 나라인 케냐를 방문한 자료가 세 개 올라있는데, 그의 자서전을 읽은 사람이면 반가운 사람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의 할머니-방송에서는 사라 '고모'가 할머니로 나오더라- 그리고 그를 아프리카로 이끌어준 이복누나 '아우마'. 거기에 더해서, 요새 케냐 내전 사태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오바마보다 몇 살 어린 삼촌 '사이드'가 가족의 고향 키수무(Kisumu, 수도 나이로비 서쪽, 빅토리아호 바로 옆에 위치) 의 참상에 넋을 읽는 신문 기사도 봤을 터다.

내가 읽고 있는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은 '뉴욕타임즈'에서 발간하는 신문으로, 이 신문사는 공식적으로 민주당의 힐러리, 공화당의 매케인을 지지했다. 그래서인지 오바마니아(Obama+mania)의 느낌을 풍기는 전문 필진의 분석은 찾기 힘들다. 아, 물론 현장기사는 상당히 고무적이지만…그리고 상당히 균형을 갖추려 애쓰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오늘자 사설면의 전문필진 분석에 올라온 글들은 '미국의 복음주의 기독교도-에반젤리스트-들을 무시하지 말라.' / '공화당원들이여, 매케인이 승리리했다고 이 선거에 낙담하지 마라' / '힐러리의 최대 강적-캘리포니아주 오바마 유세를 이끈 4명의 여성(특히 미셸 오바마. WoW!)' / 그리고... 저 유명한 폴 크루그먼이 쓴 기사가 있었다. '의료보장 공약의 승자는 힐러리다.' 오바마니아가 이 기사를 넘겨서는 안되지. 그렇지않아도 식코(Sicko)에서 힐러리가 보험회사 로비스트들에게 저참하게 무너진 꼴을 봤는데 힐러리가 더 나을 수가 있을지 믿을 수 없었다.

크루그먼의 요지는 '힐러리는 전 국민 강제 위임(madate) 의료보험을, 오바마는 의료보험금을 많이 낮추되, 국가 의료보험에 가입하는 사람만에게 보장을 한다.'는 것이다. 힐러리의 비용을 100이라 하면 오바마는 80이라 드는 돈은 적지만, 힐러리는 오바마보다 두 배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의료보장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수혜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힐러리가 더 낫다. 예전에도 '현실'에 패했던 힐러리가 과연 이걸 밀고 나갈 수 있겠냐고? 적어도 시도는 할 수 있지 않겠나. 오바마는 아예 주장조차 안했는데…

솔직히 민권운동을 조직하며 시카고 밑바닥에서 뛰었던 오바마가, 하버드를 졸업하고도 다시 지역사회로 돌아간 그가 이런 공약을 내세웠다는게 수긍이 안갔다. 하지만 조금 이해가 되는 것이, 오바마는 시카고 대학에서 헌법을 강의한 사람이다. 그리고 [희망의 담대함]에도 '헌법'에 한 장을 할애할 만큼, 그 가치를 상당히 중시한다. 따라서 헌법에서 보장된 개인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즉 나은 것을 선택할 권리를 보장한 게 아닌가 한다.

그리고 이 점이 오바마가 상대편인 공화당 지지자들-거대한 정부를 거부하고, 거대한 세금을 거부하고, 개인의 자유를 옹호하는 사람들-의 존중을 받고, 심지어 공화당 지지자들에게서도 공개적 지지를 받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본다. 참고로 이들은 '오바마칸(Obama +(Republi)can)'이라 불린다. 익히 알려진 바, 지난 2004년 전당대회에서의 기조연설 이후, 오바마는 '민주당에 갇혀버린 공화당의 혼'으로 공화당원들에게 회자되었으며, 지금도 그에 대한 일반 공화당원들의 호의는 여전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래서 며칠(몇 시간?)전 미국 언론은 충격적인 여론조사-예측결과를 발표했는데, 힐러리 대 매케인은 3%차이로 매케인 승리. 반면 오바마 대 매케인은 오바마가 3%가량 차이로 승리한단다. 이는 부동층의 선호 이동으로 나타난 결과일 수 있지만, 공화당원들의 민주당 대선후보(오바마) 지지로도 설명할 수 있다. 야후 TV 뉴스 클립을 검색하니, 모 공화당 의원은 지역구에서 대놓고 오바마 지원 연설을 하더라.

반면 힐러리에게는 악재가 쌓이는 데다가, 선거 전략에도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분명, 그녀가 남편의 임기동안 중앙 정치를 배웠기 때문에 진짜로 '준비된 대통령'인 점에는 틀림 없다. 오바마보다도 훨씬 잘 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1) 공화당 지지자들 사이에 뿌리깊게 박혀있는 반 클린턴 정서
    우리 나라 영남의 반 '슨상님' 정서를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이거 꽤 심한 듯.

2) 부시 집안과 클린턴 집안이 20여년동안 미국을 좌우해야 되겠냐는 일침
    물론 지난번 토론회에서는 가볍게 일축했지만 이는 상징적 부담이 아닐 수 없다.

3) 연일 터져나오는 전 대통령인 남편의 오버액션.
    악역을 자처한다고 나섰는데, 다른 사람이면 모를까 전임 대통령이라니!

  4) 이건 좀 지적하기가 거시기한데, 그녀의 선거운동을 담당하는 스탭들에 여성의 비중이 상당히 높아서 그런지(여성 대통령에 대한 열망 때문인가?) 홈페이지나 선거전략에 '섬세한 여성'의 느낌이 강하고, '강렬한 임팩트'가 부족하다. '인텔리 느낌이 강하고, 과도하게 깔끔하다'는게 문제다. 논리와 이성은 중요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좀 투박해도 마음이 느껴져야 하는데, 힐러리 선거운동은 오바마에 비해 너무 깨끗하고, 함께 더러워지길 거부하는 것 같아서 거부감이 든다. 게다가 유권자들에게 강하게 인상을 심어줄 수 있는 메세지도 없다. 힐러리 로드햄 클린턴...말은 많이 했는데 뭐라 했는지 기억이 안나. 버락 (후세인) 오바마? 아, Yes We Can! We want Change! 이 간단한 두 문장이 일종의 주술같은 효과를 나타내고 있어서, 평소에 정치에 관심없던 사람들이-특히 나이 어린 유권자들이!- 후보 유세장으로 몰려들고, 3$, 5$의 소액 기부가 밀려들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명백히 힐러리 선거운동 전략의 패배다.

5) 힐러리는 준비된 대통령인 '나'를 지원해 달라고 하지만, 오바마는 '제가 무엇을 해 드릴 수 있는지를 묻지 마시고, 여러분 스스로를 믿으십시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라고 외친다. 고도로 민주화된 사회의 구성원들이 '나를 믿으라'는 말과 '여러분 스스로의 능력을 믿으라'라는 말 둘 사이에서 어느 편을 더 마음에 들어할지는 자명하다.

6) 힐러리는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유세를 하면 할수록 자신과 유권자를 분리시킨다. '나는 특별하다'라는 투랄까? 오바마는 유권자와 자기가 다를 바 없음을 어필한다. [희망의 담대함]에서 개미약을 사들고 집에 돌아가야 하는 미국 상원의원의 얘기는 폭소와 함께 동질감을 자아낸다. 특히나 이 점은 그의 부인 미셸 오바마의 지원유세 내용이 큰 역할을 한다. 초등학생 두 딸을 힘들여 키우는 얘기로 연설을 시작하는 그녀의 말에 누가 몰입하지 않을 수 있겠나?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미국 민주당 경선은 2002년 말, 대한민국에서 벌어졌던 '노무현 열풍'을 다시 보는 것 같다. 그 때, 정치에 관심이 없던 젊은이들이 변화를 원하며 김대중의 서자 노무현을 지지했고, 소액 기부금인 돼지저금통이 모여들었다.(여기까지는 오바마) 노무현은 눈물을 흘리고, 기타를 직접 치며 유권자에게 다가가려 애썼다. (여기는 힐러리, 힐러리가 직접 밴드 공연에서 기타를 잡은 TV 광고가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익히 아는 바, 그런 무분별한 열정(Reckless Passion)이 낳은 결과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영남출신인데다, 링컨을 존경한다기에 '포용의 리더십'을 기대했었다. 하지만 영남출신인데도 불구하고, 링컨을 존경한 이유가 '성공한 정치인'일 뿐이었기 때문이라 그런지, 그는 곧 식어버리고 말 열정을 '압도적 지지'로 착각하여 '아'와 '피아'간의 투쟁으로 5년을 보냈다. 결과는? 표가 말해줬으니 뭐 입만 아프지.

똑같이 링컨을 존경하고, 또 JFK와 더불어 닮은 꼴로 어필하고, 게다가 링컨의 근거지인 일리노이 주 상원의원인 오바마. 그도 대통령이 된다면(혹은 힐러리-오바마 드림티켓으로 부통령이 되든) 노무현과 마찬가지로 편가르기를 할 것 같긴 하다. 그는 워싱턴 중앙 정치와 로비스트들을 혐오하며, 이에 대한 유권자들의 반감과 증오를 이용하고 있다. 다만, 오바마는 노무현과 영남이 '출신 지역'이란 단 하나의 끈밖에 없었고, 한나라당을 시작부터 적대세력으로 대했던 것과는 달리, 자신의 정적인 공화당원들을 설득하고, 그들의 동의와 존중을 이끌어낸다. 민주당원임에도 공화당원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이해하고 공감한다. '내가 적으로 삼는 것은 당신네들 공화당원들이 아니라, 당신들의 염원을, 그리고 우리의 염원을 금권력으로 왜곡시키고, 자기네 잇속만 채우는 저 워싱턴의 나쁜 놈들이다.' 공화당원들이 오바마를 적대시할 이유가 없다. 이 점이 오바마가 노무현과 다른 점이다. (아. 링컨도 편가르기를 하긴 했다. 하지만, 그것은 상대였던 민주당을 상대로 한 것이 아니라, 남북전쟁에서 자기의 명령을 무시한 장군들을 무차별 해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위대한 링컨 정치 사상의 적자는 노무현이 아니라 오바마란 얘기다.

슈퍼 화요일 결과? 공화당은 여기서 맥케인 승리로 끝날 가능성이 다분하지만, 민주당은 분명히 박빙(close)이고, 여기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3월 말까지 계속해서 다툴 것이고, 선거인단 선출이 다 끝나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슈퍼 선거인단(super delegates, 언제든 마음대로 지지를 표명할 수 있는 사람들)에 의해 이변이 일어날 수도 있다. 정말 끝을 알 수가 없다. 다만 이것이 민주당에 득이 될지 독이 될지는 알 수 없다. 매케인이 후보로 굳어지면, 그만큼 공화당은 선거를 준비할 시간을 벌게되고, 결집할 수 있다. 반면 민주당은 힘든 싸움으로 내부 알력이 극도로 심해진 상태에서 쫓기듯 공화당에 맞서야 한다. 아무리 W 이펙트(George 'W' Bush)로 공화당에 대한 민심이 최악이라고는 하지만, 거기에 안주할 수는 없다.

민주당 지도부의 선거 전략은 흑인과 여성이 맞붙은 '흥미진진한' 민주당 프라이머리라는 오락, 혹은 여흥(entertainment)를, 그리고 그 결과의 상징성(흑인이든 여성이든, 누가 되든 세계 민주정치사상 엄청난 일!)을 '미국인의 위대함'으로 포장하여 연말까지 끌고 나가는 것이다. 힐러리가 된다면 공화당의 흑색선전은 상상을 초월할 수준으로 더러워 질 것이고, 오바마가 된다면 그의 중간 이름(후세인!)과 배다른 형의 종교(이슬람)을 들어 공격해 올 것인데, 이미 상대의 공격전략이 뻔한 이상, 이에 대한 복안을 조용히 준비하고 있어야 할 터이다.

올해는 아무리 국내 정치가 희망없고, 힘들어도, 미국 대선 보는 낙으로 살 것 같다.
그리고 바로 오늘 밤이 아주 재미있을게다. 밤을 새서라도 CNN과 YAHOO를 들여다보라!

ps1. 원없이 즐겁게 영어공부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이렇게까지 글이 잘 읽히고, 귀에 쏙쏙 들어온 적이 없다. 그러다보니, 오랫동안 잊고 있던 가장 기본적인 신조가 떠올랐다. "무엇이든 '좋아해야' 잘 할 수 있다." 즉 지난 1년간 내 관심과 열정을 이렇게나 이끌어 낸 게 없었다는 얘기지. 한국 정치판이 그 모양이니, 미국 정치판에 기대하는 수 밖에...

ps2. 문국현씨가 자기를 '한국의 오바마'라고 한다는데, 이보쇼. 제 분수를 알아야지. 예전에 모 신문사 정치부 기자가 작년 선거를 평가하며 '이제야 이회창씨가 정치인이 됐다. 자존심이고 뭐고, 모든 걸 바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라고 했다는데… 당신만 믿고 온 사람들에게 그 엄청난 부담을 떠넘겨? 지금의 당신은 택도 없소. 5년간 어디 오바마가 시카고에서 했던 것 처럼 할 수 있나 두고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