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축구는 멘탈리티 게임이다.

순전히 히감독 때문에 오늘의 호주 : 일본전을 대리 한일전으로 보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글쓴이도 이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 마음으로 중계를 보았고, 뽀록성 골을 먹고 대흥분한 뒤로 84분 동안 철저한 일본의 잠그기 모드와 무더위에 질질 끌려다니는 호주의 모습에 적잖이 실망한 것 또한 나만의 생각은 아니었을 것이다.

호주는 84분 동안 그야말로 처절하게 끌려다녔다. 반칙성이 다분한 선제골을 먹고 흥분하지 않을 감독과 선수가 어디 있겠냐마는 호주 아해들은 이걸 빨리 털지를 못했다. 시간이 충분히 남아 있는 상황에서도 후방에서 한번에 날아오는 크로스는 여지없이 공격수들을 피해갔고 미들에서 공을 질질 끌다 뺏기는 상황도 자주 연출되었다. 후반 들어서는 양 측면은 거의 버리다시피 하고 중앙에만 집착하는 바람에 잠그기에 들어간 일본 수비진들은 얼씨구나 했을 것이다. 거기에 노련한 가와구치 골키퍼의 몇 차례의 선방까지...

이번 대회에서 대세로 자리잡은 4백 대신 3-5-2의 3백을 들고 나온 일본은 전반 26분 나카무라의 크로스가 뽀록으로 들어간 후로 5-3-2에 가까운 철저한 잠그기 모드에 들어갔다. 중원 볼배급의 핵심인 나카무라와 나카타라는 양질의 패싱자원을 갖고 있기에 역습이 용이했고 실제로 측면과 중앙을 가리지 않는 찬스상황을 호주의 그것보다 훨씬 모양새 좋게 만들어갔다.

보는 내가 깝깝할 정도로 경기가 풀리지 않은 채 시간만 흘러가자 후반 중반부터 히감독 특유의 극단적인 공격배치 용병술이 나온다. 그럼에도 경기가 쉽게 풀리지 않았고, 일본 또한 중원에서 연결된 패스를 윙백이 영양가 낮은 크로스로 망친다든지 결정적인 추가골 상황에서 슈왈처 골키퍼에서 살포시 안겨주는 패스(?)를 하는 등의 답답한 모습을 보여 주며 지금까지 본 예선경기 중 최고로 지루한 경기가 진행되었다. 84분까지는.

84분에 케이힐의 천금같은 동점골이 터진 이후로 호주는 극단적인 멘탈리티 상승기류를 타게 된다. 첫 번째 골이 들어가자 호주 선수들은 자신들이 언제 84분 동안 끌려다녔냐고 항변하듯 갑자기 아드레날린 분출모드로 바뀌게 되고 이것이 결과적으로 2번째 골과 쐐기를 박는 인저리타임 3번째 골까지 연결되었으니 말이다.

Best Player(호주) : 팀 케이힐 - 동점골을 뽑아내며 호주 선수들을 아드레날린 모드로 변신시킨 공로만으로도 충분히 오늘의 Best를 받을 자격이 있다.

Best Player(일본) : 나카타 히데토시, 가와구치 요시카츠 - 후반들어 히감독의 선수교체로 인해 공간이 많이 나긴 했지만 그래도 윙으로 가는 패스는 참 이쁘게 떨어지더라. 경기 내내 몇 차례의 슈퍼세이브를 해 준 가와구치 골키퍼도 괜찮았음. 먹었던 3골이 골키퍼 실수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Worst Player(호주) : 84분 이전의 수비와 미들진 모두 - 볼 키핑 안되고, 부정확한 크로스에 이은 목표를 잃은 롱패스... 상대적으로 일본의 수비가 빡빡했다고 하더라고 중앙만을 고집하는 패스는 개선의 여지 많음. 3골 모두 중앙에서 나왔다고 해도 후반 막판의 급격한 수비진 체력저하와 멘탈리티의 덕을 많이 보았음.

Worst Player(일본) : 코마노 유이치, 타카하라 나오히로 - 나카타가 예쁘게 보내준 패스를 수 차례 어이없이 허공으로 날리더니 급기야 세 번째 쐐기골 상황에서는 중앙에서 쇄도해 들어오는 알로이시를 따라다니다 제풀에 지쳐 쓰러지는 안습상황을 연출. 오늘 일본 최악의 플레이어라 감히 말하겠음. 타카하라 또한 수 차례 결정을 지어줄 만한 상황에서 골키퍼에게 패스하는 등 호주로서는 쌩유를 외칠 만하게 만들었음.


꼬랑지 : 내용상으로 보면야 여지없는 졸전이지만, 아무리 지우려도 해도 히딩크는 히딩크인지 팔이 안으로 굽는 건 어쩔 수가 없더라. 더불어 어떻게 설명할 길이 없는 히감독의 마법같은 용병술은 참... 결과론으로 봐야 할지 진짜 속에 축구의 신이라도 키우고 있는 건지 원... (흥분한 만큼 어퍼컷도 더 박력있게 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