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게임쇼로 알려진 동경게임쇼 2004가 지난 9월 26일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기자가 세계 최대의 게임쇼라고 불리는 E3와 동경게임쇼에 꾸준히 참가하면서 매번 느끼는 것이 두 가지 있는데 그 중 한가지는 게임을 만드는 세계인들의 혼에 대한 감동과 전율이며, 다른 한가지는 그렇지 못하는 한국 게임업계의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그리고 지금, 문득 스스로에게 한가지 질문을 던진다.
‘한국에서도 이정도의 감동이 전해지는 게임쇼가 10년 안에 열릴 수 있을까?’
조급하게 답을 내자면 아마도, 30년 안에는 불가능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올해 동경게임쇼에 출전한 대만 공동관은 작년에 비해 놀랍도록 발전한 수준이었다. 이 조그만 부스에서 콘솔 RPG게임은 물론, MMORPG, 퍼즐 등 다양한 장르를 공개했다. 이들 게임이 매우 높은 수준은 아니었으나 대만게임업체들의 전반적인 성장을 확인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나 한국공동관은 행사 내내 성공적이라고 보기 힘든 방문객들을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기술적인 성장 수준에 있어서도 작년에 비해 차이가 거의 없었다. 또한 멀티미디어 기술은 이미 대만의 그것에 비해 나은 점을 말하기 힘들 정도의 수준이었다.


그렇게 16개 업체가 모인 한국공동관의 한산한 모습은 강도높은 프로모션으로 일본 메이저 업체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NCsoft와 대조되어 아이러니컬한 모습을 연출하였다.


과연 국내의 최대 메이저 업체들과 한국공동관을 대표하는 한국 게임 업체들의 갭은 과연 얼마나 차이가 나는 것일까? 곰곰히 생각해보면 동경게임쇼에서 목격된 이 모습은 한국 게임업계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던 것 같다.



한국 게임업계의 특성을 바라보는 시각은 개개인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기자가 생각하는 현재 한국 게임업계의 특성은 두가지다.


첫번째는 폐쇄성이다. 주요 시장이 MMORPG인 탓에 게이머들은 많은 노력이 필요한 하나의 게임을 즐기는 동안 다른 게임을 즐기기가 어렵고 진입 장벽 또한 매우 높기 때문에 즐기고 있는 게임이 매우 지겹지 않는 한 정착하려고 한다.


두번째 특성은 영속적인 생명력이다. MMORPG는 기본적으로 영속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어서 성공적으로 게이머들을 흡수한 게임들은 일년에 몇 번씩 게임 내용을 추가시키는 것으로 오랬동안 유저들을 묶어 놓을 수 있다. 문제는 게이머를 오랜시간 묶어두는 동안 폐쇄성이 유지되면서 수요층 또한 능동적이지 못하며 폐쇄적이라는 점이다.


결국 게이머들은 하나의 게임을 즐기며 하나의 기업에 많은 돈을 지불한다. 상업적으로 성공하는 게임들의 종류는 낮아지고 게이머의 수요 그리고 개발사의 수익은 하나로 집중된다. 이것은 자연히 심각한 수준의 독과점과 규모의 경제 현상을 유발시켰고 이 현상이 5년 이상 암묵적으로 지속된 한국 게임산업은 그야말로 ‘중소기업의 초토화’라는 말이 어울리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우리는 거대 매체의 기사를 통해 간혹 IT강국, 게임 대국 이라는 대한민국의 자존심을 확인하곤 하지만, 정작 우리는 수백개가 넘는다는 한국의 게임 기업들의 이름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까? 우리가 자존심 세워 말하고 있는 한국 게임 개발사의 90% 이상이 월급이나 제대로 나오면 다행인 것이 현실이라면 믿겨지는가?


모기업의 직원은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에 의욕적으로 게임업계에 발을 들여 놓았지만 6개월 이상 월급을 못 받게 되자 제 풀에 지쳐 나갈 수 밖에 없게 되었다면서 한숨 섞인 푸념을 늘어 놓는다. 게임 개발사의 프로젝트는 자금난으로 물갈이되고 그것을 구조조정이라고 부르는 회사가 있는가 하면, 하루밤 만에 회사가 문닫고 실업자가 되는 경우가 있다는 이야기도 결코 소문이 아니다.


혹자는 이런 현상을 개발사의 창의성을 탓하거나 마인드의 결여 탓으로 돌리고 있지만, 기자는 거대기업에 의해 억압된 시장과 무관심한 환경이야 말로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문제라고 본다. 만약 한국 시장이 미국이나 일본처럼 기술력은 떨어지더라도 창의적인 게임들이 성공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회 시장이 주어졌다면 중소기업 초토화라는 최악의 시나리오 대신 노력에 따라 무한한 성장을 기대할 수 있는 산업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중소기업이 아무런 성과도 없이 문을 닫고 있는 동안 현재 산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리딩기업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NCsoft는 자신들의 보이지 않는 독과점 이득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면서도 글로벌 리딩기업으로서 매우 실망스러운 태도를 보여준 것이 사실이다. 이들은 한술 더 떠 어느 정도 실무 경력이 있다고 하면 자신들의 신규 사업에 투입시키기 위해 상대기업의 사정도 가리지 않고 헤드헌팅을 했고, 이러한 행위는 이미 업계에서도 소문이 파다할 정도이다.


지난 일이지만 NCsoft의 개발 3실로 KGDA 정무식회장이 들어오면서 한 때 NCsoft의 한국게임산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소문이 있었다. 지금에 와서야 게임산업에 대한 관심은 그의 의도일 뿐이지 NCsoft의 의도가 아니었다는 것이 밝혀졌지만, 그만큼 NCsoft에 게임업계가 걸었던 기대는 적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한국 게임산업에 희망은 없는가?
우리들에게 그나마 남아있는 마지막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게이머들의 억압된 관습과 상식을 부수어줄 뛰어난 창조성과 기술력을 갖춘 게임이 될 것이다. 기자가 희망을 가지고 바라보는 이 게임들은 하나 둘 런칭을 준비하고 있고 아마도 2004년을 넘기기 전에 공개될 예정이다.


한국 게이머들의 상식을 부수는 게임들의 성공이 반복되고, 지금까지의 폐쇄적인 관습을 부수고 또 부술 때 한국의 게임산업은 비로소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갖추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발전의 기회가 한국을 진정한 게임 대국으로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 될 것이다.




-출처-플레이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