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어쩌다보니 리눅스를 사용해야할 상황이 되면서 리눅스와 GNU에 대해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카피 레프트 라거나 오픈 소프트웨어라거나 GNU선언 이라거나... (아니 난 그냥 리눅스 사용법이 알고싶었는데...? 정신부터 배우라는 친절한 책들....)

 그런 개념들을 접하면서 뭔가 신세계를 만난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솔직히 아직도 그 세계는 익숙하면서도 낮설게 느껴지긴 합니다만...

 

 자유라는 개념에 대해서 든 생각이 있습니다.

 우리가 보통 자유에 대해 배울 때는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라는 개념을 함께 배웁니다.

 이 의미가 전제하고 있는 바는 자유라는 것은 남에게 피해를 끼칠 가능성이 있다. 라는 의미입니다.

 또한 그것은 자기 자신만을 위한 행위 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물론 인간에게는 자신에게 이로운 무언가를 갖고 싶어하는 욕망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배타적일 경우에 인간들은 서로 해를 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그런 것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에게 이로운 것을 만들 자유 같은 개념이 있을 수 있다 라는 점이 떠올랐습니다.

 자유의지라는게 왜 남에게 해를 끼치는 행위에만 국한되겠습니까?  

 

 비슷한 이유로 자본주의도 훌륭한 이념이라 생각합니다.

 과거에는 인간의 욕망은 다른 인간과 상충되는 것으로 사회의 안정을 위해서 욕망은 통제의 대상으로 인식되었습니다.

 그런데 자본주의에서는 정 반대로 인간이 이윤을 추구하는 행위를 용납하여도 그것이 사회를 붕괴시키지 않고 오히려 원활히 돌아갈 수 있게 한다. 라는 주장을 합니다.

 물론 현대 사회에서 자본주의의 폐해는 매우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본주의의 또다른 모습...

 즉, 돈을 가치의 척도로 만들어버리고 모든 가치를 돈으로 환산, 혹은 교환할 수 있게 만들어버린 상황이 만들어낸 문제입니다.

 이 사회에서 통용되는 규칙에서 사람 목숨도 어느정도 돈으로 환산이 가능합니다.

 죄를 지었을 때 합의 유무에 따라서 구형의 정도가 달라진다는 점이나 위험한 일에 대한 생명 수당, 혹은 보험금 계산 등등...

 그런것을 인정하고 계산을 한다는 것은 사람 목숨을 돈으로 환산하는게 아니라 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법 조차도 옳은 것이기에 따라야 할 대상에서 이익과 손해에 따른 선택의 대상으로 전락하였습니다.

 법을 어겼을 때의 이익과 적발되었을 때의 손해를 저울질해가며 이익이 더 큰 행위를 선택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차로 어디까지 시간 안에 도착을 해야 하는데 과속을 안하고는 제시간에 도착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가정해봅시다.

  법을 지키는 것이 옳고 그름의 문제라면 거기에 답은 명확합니다.

 그러나 법을 지키는 것이 이익과 손해를 가르는  문제가 되어버린다면 과속을 하였을 시의 이익과 그때 지불해야할 벌금을 저울질하여 이익이 큰 쪽으로 기울 것입니다.

 

 정의라는 개념조차 이익과 손해로 이해하려하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인간이 이익을 추구하는 것 자체를 허용해서 생긴 문제로 치부하기에는 좀 문제가 있습니다.

 모든것의 척도가 되는 한가지 환산가치의 추구가 문제의 근원입니다.

 인간의 이익은 돈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행복, 명예, 존경, 이웃과의 화목 등등.. 뭐 그 이외에도 좋은 가치는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전 비난합니다. 비난은 정의를 위해서 매우 필수적인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 나쁜일을 했는데 비난받지 않는다면 그것이 나쁜 일인지 어찌 압니까? 누가 그 일을 저지르는 것을 꺼리겠습니까?  

 

쓰고보니 어째서 리눅스 이야기가 이렇게 되었는지...

 

 그래서 결론은

 인간에게 자유를 허용하면 딱히 무언가 사회에 해가되는 일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창조적인, 재미있는, 유익한 것들도 잔뜩 생길지도 모른다.

 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