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추천은 이 책의 내용을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확실히 과거에 비하면 해외의 명작들이 소개되는 기회는 점점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그냥 베스트셀러 위주로 소개가 될 뿐이죠. <인 콜드 블러드>의 트루먼 카포티는 <인 콜드 블러드>를 절정으로 완전히 꺾여 버리기도 했고, 또 소설보다는 영화 각본가로 더 이름을 떨친 사람(대표작은 <티파니에서 아침을>)이기는 해도 국내에 소개된 책은 정말로 극히 드뭅니다. 그것도 한창 경기가 좋던 90년대 초반에 몇 권 소개되고는 올해에 와서야 그의 역작 <인 콜드 블러드>가 소개되네요.

카포티의 다른 작품들은 차치하고서라도 <인 콜드 블러드>가 출간된지 4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소개된 것은 국내 출판계의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트루먼 카포티 = <인 콜드 블러드> 로 인식되는 대표작이기도 하거니와, 이 작품이 바로 미국 저널리즘의 흐름을 바꿔놓은 작품이니까요.

"In Cold Blood : A True Account of a Multiple Murder and Its Consequences / 인 콜드 블러드: 일가족 살인 사건과 수사 과정을 다룬 진실한 기록"은 시공사에서도 소개하고 있다시피 최초의 팩션으로 인식되는 작품입니다. 진실은 진실이되 소설인 것.

이런 모순을 안고 있는 <인 콜드 블러드>를 굳이 "냉혈한"으로 번역하지 않고 원어를 그대로 썼는가는 의문이지만, 그 대답은 이 소설이 아닌, 2006년 아카데미 남우 주연상을 필립 시무어 호프먼에게 안겨준 작품 <카포티>에서나 들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 콜드 블러드>의 인기에 힘입어서인지 기대하지 않았던 <카포티>도 개봉을 하게 되었네요. 국내에서는 이제서야 <인 콜드 블러드>가 출판되었기 때문에 작가에 대한 인지도도 대단히 낮아서 cgv인디관에서 겨우 개봉이 되었습니다.


        1959년, 캔자스 주 조용하고 작은 동네 홀컴에서 일가족 네 명이 샷건으로 무참하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뉴욕 타임스'의 기사를 확인한 카포티는 그의 오랜 친구 하퍼 리(<앵무새 죽이기>의저자)와 함께 작은 마을에 방문한다. 체류 중에 두 명의 범인이 체표됐고 카포티는 그들과 인터뷰를 시도한다. 6년 동안 그는 두 살인자의 삶과 작은 마을을 둘러싼 모든 것을 수천 매의 노트에 담았다. 그리고 1966년 <인 콜드 블러드>가 출간된다. 이 작품은 카포티 최고의 걸작으로 또 당대 출간된 비소설 중 가장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 여겨지고 있다. '논픽션 노블'이라 불리는 <인 콜드 블러드>는 저널리즘의 방법론과 소설의 작법을 동시에 적용한 작품으로 소설이자 저널이며 또한 르포르타주의 영역에 자리잡고 있기도 하다.
<인 콜드 블러드> 뒷표지에서



이 책을 팩션이라는 이름으로 판매하고 있기 때문에 기존의 팩션들 - 요컨대 <핑거포스트, 1664>나 <단테 클럽> 등의 빛바랜 시대를 상상하면 곤란합니다. 사건이 있고서 최소 100년은 뒤에 적힌 다른 작품들과 달리 이 작품은 그 사건이 있었던 그 순간 그 자리에서 기록되고 읽혔으니까요.

저널리스트로서 글쓰기를 단련한 카포티의 터치는 군더더기가 적고 날카로우며 66년에 나온 책이지만 여전히 현대적입니다. 이 책의 느낌이 잘 살아 있을 수 있는 것은 이 책을 번역한 박현주씨의 공헌이 크다고 생각해요.


1959년 일가족이 살해 당했습니다. 기사에 따르면 단서는 없었고, 미제 사건이 될 가능성이 농후했죠. 일가족 살해 사건이 주는 쇼크가 있다고는 해도 굳이 이 사건이 그의 눈을 잡아끈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일곱 장만 넘기면 범인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이 평화로운 일가족을 죽이기까지, 카포티는 전력을 다해서 이 가족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운 사람들이고, 훌륭하고 모범적인 가족인가를 묘사합니다. 대체 어째서 이런 가족들이 죽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을 거예요.

그들의 삶을 묘사하는 중간중간, 태평하게 이 살인을 준비하는 살해범들의 모습이 묘사되면 우리는 점점 더 불가해한 삶의 법칙 --- 죽는 사람은 늘 좀 더 사회에 필요한 사람인 이유는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하며 인상을 찌푸릴 뿐이죠.

조금 냉담한 어투로, 중간중간 그는 이런 식으로 말합니다.

        (전략)그날 밤, 머리를 말리고 빗질한 뒤 성기게 짠 두건으로 머리를 묶고 나서 낸시는 다음날 아침 교회 갈 때 입을 옷들을 꺼내놓았다. 나일론 스타킹과 검은 펌프스, 빨간 벨벳 드레스. 낸시의 옷 중에서 제일 예쁜 옷이었고 직접 만든 것이었다. 바로 이 옷을 입고 낸시는 무덤에 묻히게 된다.


평범하고 사랑스럽고 예쁘장한 여자애의 미래는 이미 결정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공평하고 올바르게 살아가는 아버지 허버트와 신경쇠약증세가 있으나 소심하고 마음 착한 어머니 보니, 자기 세계에 빠져있는 마르고 키가 큰, 착하고 무해한 아들 캐년도 포함하는 이야기예요.

마을 사람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 마을에서 가장 살해당할 가능성이 없는" 가족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게 되죠.

이것은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에 가장 이해할 수 없고, 그렇기에 반드시 끝까지 읽어야 하는 책이 되는 것입니다. 도대체 걔들이 왜 이 가족을 선택해서 죽였는지. 범인이 누구냐는 이제 사실 문제가 아녜요. "왜" 죽였느냐가 문제인 것이죠. 이 노골적이고 영악한 구성때문에 저는 그가 전력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제 생각이 맞는지 그는 그 이후로는 완성된 장편을 한 편도 쓰지 못했습니다.



이 소설이 묘사하고 있는 사건은 목격자를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건 바로, 이 사건의 묘사가 범인의 입을 통해 나오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범인 두 사람이 바로 목격자인 것이죠. 카포티는 이 사건에 대해서 집요할 정도로 입을 다물고 있던 두 범인 중 특히, 페리에게 집착을 느낍니다.

        페리의 어머니는 토종 체로키 원주민이었다. 페리의 피부와 머리색은 바로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것이었다. 요오드 빛의 피부, 짙고 축축한 눈, 풍성한 검은 머리. 머리숱이 많은 덕에 페리는 항상 머릿기름을 발라서 손질하고, 구레나룻을 기르고 미끈하게 앞머리까지 내렸다. 어머니 쪽에서 물려받은 특징은 누가 봐도 눈에 띄었다. 아버지가 물려준 주근깨와 붉은 머리, 아일랜드인 같은 얼굴은 티가 덜 나는 편이었다. 인디언 피가 켈트인의 혈통을 구석구석 물들인 셈이었다. 그래도 생기가 철철 넘치는 장난기나 아일랜드인 특유의 주제넘고 이기적인 성격과 분홍색 입술이나 건방진 코가 켈트인의 혈통이 확실하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기는 했다.



이런 섬세한 묘사에 비하면 다른 살인범인 딕에 대한 묘사는 극히 적은 편이예요. 물론 소설 내에서 딕 자신이 수없이 많은 말을 하고 있기는 하고 불공평할 정도로 그에 대해서 설명을 생략하고 있지는 않지만, 어떤 면에서는 카포티는 이 책을 페리의 시각에서 쓰고 있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은거죠. 딕을 시시하게 보는 페리의 시선 말예요.

150cm이 간신히 넘는 키의 페리 스미스.
카포티의 이름을 검색해 본 사람은 곧 깨닫게 됩니다. 카포티의 키 역시 160cm의 단신이었고, 페리 스미스와 마찬가지로 꽤 나이를 먹을 때까지도 여전히 소년같은 얼굴을 했었고, 창녀보다 못한 어머니 밑에서 정신적인 학대를 받았으며, 페리 스미스와는 다른 방식이지만 사회에 계속 반항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런 그가 이 책을 쓰기 위해 감옥으로 찾아가 그와 함께 먹고 자면서 그의 마음을 열려 하고, 그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페리 스미스는 이 남자가 자신와 정신이 통하는 친구이며 자신을 구해줄 친구라 믿기 시작했고, 사형을 2주 남겨둔 날 마침내 살인이 있었던 그 밤을 이야기 해 줍니다. 죽음 앞에서 마지막 카드를 내어 놓은 것이죠. 이 친구가 좋은 변호사를 선임해서 목숨을 구해주리라 믿었으나……

이 책은 페리 스미스와 리처드 히콕이 죽어야만 완성되는 책이었습니다.

트루먼 카포티는 살해 순서와 방법, 그 날 있었던 모든 묘사를 들은 후 그를 내쳐 버립니다. 그는 끝까지 페리 스미스에게 책 제목을 밝히지 않았으며 그 제목이 바로 <인 콜드 블러드 : 냉혈한>입니다.


어떤(?!) 냉혈한인지, 그 후 트루먼 카포티의 감상이 어떠했을 것인지 궁금하다면, <인 콜드 블러드>를 보시기를 권합니다. <인 콜드 블러드>는 진실한 이야기이니까요. :)

더 보기 : In Cold Blood : A Legacy -  인 콜드 블러드 40년 특별 섹션. 범인들의 멀쩡하게 잘생긴 얼굴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