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GTA시리즈를 좋아합니다. 무엇보다 그 방대한 자유도를 게임상에 구현해냈다는 게 대단해요. 이제 이만한 자유는 게임이 아니면 느낄 수 없잖아요. 하지만 한가지 불만 중 하나는 여러 시리즈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음에도 왜 경찰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지 않냐는 거에요. 그럼 사람들은 선과 악이 백지장 차이 밖에 없다는 교훈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될 수 있을 텐데. 혹자는 경찰이 주인공이면 이 게임의 최대 장점인 자유도를 살릴 수 없다고 얘기할 지도 몰라요. 그러나 제 얘길 한번 들어시죠. 아마 생각이 바뀌게 될 겁니다.

-우선 우리는 주인공이 경찰이라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해 볼 겁니다.
동료, 브리핑, 범죄현장(추리), 조직적인 출동, 잠복수사, 혹은 주차위반 딱지 끊기 등등

그러면서 점점 이 도시를 장악하고 있는 조직과 보스에 대해 알게 되죠.
순찰 중 우연히 범죄 현장을 직접 목격할 수도 있어요. 미션은 여자의 단발마에서 시작됩니다. 주인공이 소매치기를 발견하게 되고 쫓습니다. 순식간에 상황은 추격적으로 이어지죠. 골목 혹은 폐가를 누비게 됩니다. 어쩌면 범인을 쉽게 검거할 수도 있고, 범인이 인질극을 벌어는 극단으로 갈 수 있습니다. 보통은 골목에 숨어 검거를 피하거나 아니면 갑자기 나이프를 들고 튀어 나오죠. 여기서 중요한 건 플레이어가 어느 정도의 스릴을 만끽할 수 있다는 겁니다. 수갑을 채울 때의 그 쾌감이 극에 달하도록요.

만약 범인이 자동차를 몰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자동차 추격전이 벌어지겠죠. 그 와중에 기물이 파손될 수도 있습니다. 이때 기물은 경찰이 전적으로 보상을 해줘야 하기 때문에 너무 심하게 파손하며 다닐 수록 주인공은 진급이 어려워질 지도 모릅니다.

진급은 게임 내 레벨 개념을 대신합니다. 주인공에게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되지요. 그런데 진급 자리를 다투는 라이벌이 있다면 어떨까요? 플레이어의 검거율이 라이벌보다 높다면 다행이지만 만약 상대가 터무니 없이 앞서고 있다면? 주인공은 킬러를 고용하거나 한밤중에 몰래 그의 집에 찾아갈지도 모릅니다. 만약 이런 식으로 선을 넘게 되면 처음엔 성공적으로 일처리를 한 것처럼 보이게 합니다. 그러나 플레이 중간중간 수사망이 좁혀 오고 있다는 압박으로 작용하죠. 예컨대, 갑자기 전화벨이 울립니다. 자신을 내사과 담당자라고 밝힌 사람이 일정을 정해 서에 들리라고 하는 식이죠. 주인공은 찾아갈 수도, 안 갈 수도 있습니다. 만약 찾아 간다면 내사과 직원은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고 주인공은 선택지를 선택하게 됩니다. 여기서 문제가 생기면 위험하겠죠. 그리고 만약 찾아가지 않는다면 아마 결정적인 순간, 즉 주인공이 진급하거나 우수경찰표창을 받는 순간에 범인으로 몰려 체포되는 불운을 겪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에 대한 결과로서(플레이어가 체포되건, 도망치건, 감옥에 갔다 풀려나건), 주인공이 직업을 잃게 되면 본격적인 GTA 플레이가 시작될 수도 있습니다. 퇴역한 형사, 부패한 전직 형사라는 장치는 종종 영화에서도 쓰이잖아요. 이 와중에 범죄조직을 소탕하면 다시 명예로운 경찰이 될 수도 있죠. 아니면 탐정이라는 사무실을 개소할 수도 있겠구요.

라이벌 개념을 범죄율을 놓고 경쟁하는 도시로 확대 적용해볼 수도 있겠어요. 이에 따른 인구 유입과 시민의 압박이 정도가 다를 수 있겠고, 세수가 줄고 사람이 도시를 계속 떠나게 된다면 할렘이 생길 수도 있겠지요. 범죄율이 높다는 건 그만큼 치안에 공백이 있다는 얘기니까, 갱단이 좀더 과감하게 혹은 대담하게 거리를 활보하게 될 겁니다.

참, 검거를 할 때는 무척 조심해야 합니다. 범인(특히 유색인)을 심하게 폭행하면 간혹 시민이 이를 동영상으로 찍을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자신의 모습을 TV가판대나 빌딩에 설치된 전광판을 통해 보게 될 지도 모르니까요. 이 때문에 강등될지도 모릅니다.

이밖에도 다양하고 소소한 플레이들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나이트 등지를 돌며 갱에게 돈을 뜯어내거나(부패도를 측정하게 해서 내사과랑 연계할 수도 있겠죠. 부패도가 높을 수록 승진에 불이익이 갈 겁니다),
-대규모 갱을 체포할 때 무전을 쳐서 동료를 부를 수 있거나
-범인의 몽타쥬를 언제든 볼 수 있어, NPC들 사이에서 범인을 솎아 낸다거나 하는 등의

경찰이라서 가능한 플레이가 분명 많이 있을 거에요. GTA는 늘 폭력성이 이슈였는데 플레이어를 갱단이 아니라 경찰로 해서
도덕적 규범의 선을 미션이 아닌 플레이어의 선택권으로 둔다면 그런 이슈와 선입견으로부터 일정 부분 자기 당위성이 가능 하겠지요.
물론 여기서 매우 중요한 교훈은 선과 악의 차이가 백지장에 불과하다는 것이겠지만요.

문득 생각이 떠올라 적어두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