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밝혀두지만 난 소니 매니아도 아니고, 소니 포비아도 아닌 보통 사람인데, 어쩌다보니 주변의

소형전자제품들이 하나둘씩 소니제품이 끼게 된 사람이다.

소니제품들에게는 몇가지 특징이 있긴 한데, 일반화되기는 어렵긴 하지만

1. 약한 내구성

2. 묘한 혁신성

3. 메모리 스틱


1번과 2번에 대해 얘기하자면 기나긴 이야기 + 수많은 논란이 이어질것 같아서, 3번 메모리 스틱에

대해서만 얘기하고자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난 메모리스틱이 싫다.

정말 싫다.

매우매우매우매우매우매우매우매우매우 싫다


기업이 어설픈 기술혁신을 통해 가치를 파괴한 경우의 대표적 케이스를 들자면 메모리스틱을 들 것이다.


비싼 가격

아집스러운 비호환성

일반/프로와 일반/듀오의 기묘한 4가지 조합을 통한 혼란 가중

수급의 어려움



디지털 기술의 핵심 매체라고 할 수 있는 휴대용 스토리지에서 메모리스틱의 의미는 차라리 악몽과도 같다

가격이나 구현방식 기타 다른속성이 있지만, 본질적으로 메모리스틱이 지니는 의미는, 카세트 테이프의

공테이프와 같은 것이다. 소니 워크맨을 사면 소니테이프만 써야 하는데, 이놈의 테이프는 파는데도

별로 없고, 가격은 두배이상 비싸고, 저속 테이프용 기계에는 고속 테이프가 안 들어가고, 큰 테이프에는

작은 테이프 넣으려고 하면 아답타를 끼워야 하고, 작은 테이프 기계에는 큰 테이프를 못 넣고...



왜 이런 물건을 만들어낸 것일까?

적어도 소니는 두가지 아주 중요한 것을 까먹은게 아닐까 싶다.


첫째 교훈. Beta 방식 비디오의 실패

이것은 티핑포인트라던가 크리티컬매스 같은 개념을 설명할 때 워낙 자주 인용되는 사례이기 때문에

내가 굳이 더 얘기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둘째 교훈. 워크맨의 성공 이유

워크맨은 작고 예쁘고 실용적이고 대중문화와 잘 조합되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막상 제일

중요한 전제조건인데도 사람들이 그다지 중요하게 언급하지 않는 (너무 당연하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르지만) 점을 꼽는다면, 워크맨은 보통 사이즈의 보통 테이프를 잘 재생, 기록한다는 점이다.

워크맨보다 더 작은 사이즈의 카세트/레코더와 그와 조합되는 보통 테이프보다 더 작은 사이즈의 테이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어느것도 대중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메모리 스틱에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소니가 만드는 메모리스틱 세상은 소니 제품의 사용자를

일반적인 디지털 세상으로부터 '격리' 시켜버리고 있다는 것이다. 한번 이쪽으로 발을 들여놓으면 엄청난

불편을 감수할 수 밖에 없다.


아무리 소니가 콜롬비아 레코드 같은 미디어 회사와 게임기, TV, PDA, 카메라 등등을 종류별로 다 만들고

있어도, 이 세상은 소니의 것이 아니다.


조엘 온 소프트웨어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엑셀이 로터스의 시장 점유율을 앞지르기 시작하게된

계기가 된 것은 엑셀에서 로터스용 파일을 쓸 수 있게 되었을 때이다 (로터스 파일을 읽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새로운 세계에 대해 선뜻 진입하기보다는, 여러가지 따져본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요소는

언제든지 내가 되돌아올 수 있다라는 안심이다.


메모리스틱을 통해서 소니의 제품들간에 사용의 편의성을 높이고 사람들이 소니의 제품만을 사용하게

만든다는 전략은 소비자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가치파괴 전략이다.

소니에서 ATRAC 포맷을 사실상 포기하고 MP3 플레이어를 만들기 시작한 것 처럼, 메모리스틱을 포기하고

(그런 기록 매체를 만드는 것들은 중소업체들이 서로 경쟁하게 만들 일이다) SD 메모리를 지원하게 만들면

정말정말정말정말정말 좋을텐데...


웬지 보통의 카세트 테이프를 넣을 수 있으면서도 작은 크기의 카세트플레이어를 발명해낸 소니의 전

회장님이 저승에서 혀를 차는 모습이 떠오를 것 같다..

imcgames 의 김학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