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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머릿속에서 나 자신을 발견하면 이런 느낌일까?

거창하다면 거창할 3개월의 어드벤쳐를 끝내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서 뿌듯한 성취감이나 무언가의

소중함을 떠올렸다는 교훈보다는 그저 멍하고 내가 뭘한건가 하는 회의감이 들었다는 솔직한 술회를

보면서 느낀 생각들이다.


나는 스스로를 routine형 인간이 아니라 project형 인간으로 살아왔다. 고등학교때 파스칼과 씨를

배우면서 대학에 가게 되면 게임을 만들어야지하고 생각한 이래로 나의 삶은 언제나 프로젝트에

묶여있었다


게임을 만드는 것은 짧게는 1년 길게는 5년 이상씩 하나의 프로젝트에 묶여서 사는 삶을 의미한다.

스스로 해야겠다고 해서 시작한 이상 타협은 있어도 포기는 없다.

처음에 어떤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에는 호기심과 목표의식 등등의 초심을 갖고 시작하게 된다. 그러나

시작하고나서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글쓴이의 발바닥이 까지고 아파오는 것처럼 초심의 즐거운 부분은

금새 휘발되어 버리고 고난의 연속이 시작된다.


이걸 내가 완성할 수 있을까, 끝까지 갈 수 있을까 등등의 고민을 넘고나면 그냥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만

든다. 예전에 병특회사에 다니면서 밤에 라스를 만들던 시절에는 퇴근할때 지하철을 보면 그냥 선로에

뛰어들어 버릴까 하는 생각도 여러차례 했었다. 누가 억지로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닌데, 주위를 돌아보면

나 말고도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도 딸려있었다.


그렇게 그냥그냥 버티다가보면 어느새 도달할 수 없을 것만 같아보였던 끝이 보인다. 그리고 골드 마스터

시디를 구워서 넘겨주고 난 다음 잠자리에 눕고나면 성취감의 들뜬 마음이 아니라 그저 허탈한 생각만

들 뿐이었다. 90년대 게임 만들어서 벌 수 있는 돈이라봤자 얼마 되지도 않았고, 팀원들과 나눠갖고 나면

그동안의 생활비도 충당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집에서 엄마가 밥을 해주거나 회사에서 월급을 받으니까

할 수 있었던 취미생활일 뿐이었으니까


그래도 알 수 없는건, 그렇게 할 땐 괴롭고, 끝나고나면 그저 멍해지는 일인데도 끝나고 나서 몇주 쉬고

나면 다시 좀이 쑤시고, 공부 좀 하다가 다시 프로젝트 할 거리를 찾게 되더라는 것이다. 어쩌면 그저

남들처럼 주중에는 일하고 주말에 친구만나서 술마시고 영화보고 놀고 하는 routine형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지금은 처자식에 대한 의무감에 못하고 있지만, 내가 바이크 타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는 며칠동안에 저

프로젝트를 몇년 하면서 느꼈던, 시작할 때의 설레임, 도중의 피곤함과 괴로움, 이제 거의 다 왔다는 오기,

집에 와서 헬멧을 벗고 드러누운 후의 허탈함을 압축해서 느껴볼 수 있다는 점이다. 나의 바이크 타기는

속도를 즐기거나 시원한 바람을 맞는 것이 아닌, 그저 나 자신을 발견하고 과거로 돌아가서 나 자신을

달래주는 ritual 이었던 것이다.

imcgames 의 김학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