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오후. 머플러 교체를 마친 나의 스포스터를 한남동에서 찾아왔다.

머플러 교체와 리제팅은 새로 나온 할리의 일종의 봉인해제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에어클리너와 머플러를 좀 더 공기의 순환이 용이한 부품으로 교체하고, 늘어난 공기의 양에

맞춰서 카뷰레터의 분사 농도를 조절하는 것이 리제팅이다. 이 과정을 거치고나면 스포스터의

경우 약 5-10 마력의 출력이 증가된다고 한다. 전체 출력이 50-60 마력정도 되는 스포스터

에게는 비용에 비해 상당한 퍼포먼스 향상이 있다.

그럼 왜 처음부터 이런 작업을 한 상태로 세팅해서 신차를 출고하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미국의 배기가스규제기준을 준수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어쨌든 마후라도 스크리밍 이글로 바꾸고 나니 이제야 우렁찬 할리 본연의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느낄 수 있다. 소리가 큰 것이 주변에 폐를 끼칠 수도 있는 것이긴 하지만, 오토바이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안전을 확보하기에 매우 중요한 수단이기도 하다. 오토바이 사고중 많은 것이 갓길로

운행하고 있는데, 차가 옆으로 우회전을 하거나 또는 문이 열리면서 충돌사고가 나는 것인데

적어도 소리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게 되면 그만큼 사고의 확률은 훨씬 줄어들게 되기 때문이다.

참고로 오토바이를 타고 나서 여러가지 차를 탈때는 느낄 수 없었던 것들을 많이 느끼게 된다.

예를 들면 오토바이들은 차가 막힐 때에는 차 뒤에서 순순히 기다리고 있지 않고, 어떻게든 차 사이나

갓길로 해서, 심지어는 중앙선을 넘어서까지 필사적으로 신호등 앞으로 이동을 하곤 한다. 내가 차를

타고 있을 때는 이런 것들이 우리나라 오토바이 라이더들의 의식문제.. 좀만 기다리면 될걸 성질이

너무 급해서.. 라고만 생각했는데 막상 내가 오토바이를 타보니까 차 뒤에서는 계속 앞차의 매연이

나오기 때문에 (특히 디젤차나 버스) 이걸 다 들이마실게 아니라면 어떻게든 공기를 찾아서 앞으로

갈 수 밖에 없더란 것이었다 -_-;; 이 글을 본 여러분도 옆에 오타바이가 신호대기중 갓길로 앞으로

나갈 때에는 최대한 양보해주기 바란다.


어쨌든 드디어 봉인이 풀리고 우렁찬 엔진음을 낼 수 있게된 할리를 보자 빨리 투어를 가야겠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아서 즉시 6번 국도를 향해 달리기 시작하였다.

중간에 좀 위험했던 기억이라면 갑자기 도로가 젖은 구간이 나오길래 순간적으로 속도를 줄여야

겠다고 생각하고 너무 속도를 갑자기 많이 줄였다가 (기어를 2단을 내렸다) 뒷바퀴가 슬립이 나면서

상당히 크게 휘청거렸던 구간이 있었다. 뒤에 차도 오고 있었는데 만약 오토바이가 넘어졌더라면

사고가 났을 수도 있어서 역시 뒷바퀴의 갑작스런 제동은 위험하다는 것을 깨닫을 수 있었다.

가장 크게 문제가 되었었던 것은 장비였다. 모양이 예뻐서 골랐던 반모 헬멧은 앞에 쉴드를 부착했음

에도 불구하고 시속 80 을 넘어서기 시작하면 엄청난 바람소리 때문에 귓가에서 계속 폭음이 들려와서

상당한 부담이 되었다. 마스크를 코와 입에 둘렀는데도 바람때문에 자유로운호흡에 부담이 느껴져서

시속 80 이상은 잘 낼 수가 없다보니 투어 시간도 자동차로 갈때에 비해 상당히 길어질 수 밖에 없었고

체력의 소모도 꽤 느껴졌다. 게다가 이 한여름에 두툼한 데님 자켓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밤이 되니까

온몸에 한기가 스며들정도로 추워지니 역시 많이 힘이 들어서 일단 쉬었다 가기로 했다.

표지판을 보니 인제로 가기 전 신남 부근 근처의 여관에 들러서 잠을 청했다.

아침6시에 일어나보니 오마이갓 폭우가 쏟아지는 것이 아닌가? 이 빗속을 뚫고나갈 우비도 없고 해서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렸다. 잠시 비가 그치는 것 같길래 나갈까 했었는데 다시 비가 오고 해서 10시까지

여관에서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리다 간신히 길을 나설 수 있었다.

하지만 비가 그쳐도 노면에는 비에 완전히 젖어있고, 앞에 가는 차가 노면을 지날때 계속 물방울이

뿌려져서 금새 온몸이 홀딱 젖고 부츠속에도 물이 가득찼지만 오토바이를 타면서 직접 경치를 느끼면서

가는 기분은 상당히 좋았다. 미시령을 지나 동쪽을 향해 가면서 어디로 갈까 생각을 해보다 문득 안가본

최대한 북쪽으로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고개를 넘고나니 구름도 완전히 걷히고 쨍쨍 내리쬐는

햇볕을 느낄 수 있었다. 간성을 지나 최북단 통일 전망대까지 갔었는데 막상 전망대에는 오토바이는

들어갈 수 없다는 제지를 받았다. 아니 오토바이가 뭔 문제가 있다고 못 들어가나? 생각해봤지만

어쩔 수 없이 발걸음을 돌려서 뒤로 돌아가다 '우리나라 최북단 해수욕장' 이라는 xx 리 (이름이 기억

안난다) 해수욕장으로 들어갔다.

바다 구경도 하고 일광욕도 할 겸 해수욕장에 들어가니 사람들은 다 수영복을 입고 있는데 나 혼자

두꺼운 자켓, 긴바지, 부츠에 헬멧까지 쓰고 있으니 상당히 대조적으로 보였을 것 같다. 어쨌든 웃통을

벗고 바지를 걷어올리고 물속에 들어가니까 한결 나았다. 수영복을 가져올걸 하는 후회가 들었으나

어쩔 수 없었다. 역시 가방을 장착하지 않은게 투어링에는 치명적이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2시간쯤 바다에 들어갔다 일광욕을 하다 다시 남쪽으로 출발. 햇볕을 쬐면서 양말과 부츠도 완전히

말려서 뽀송뽀송하게 라이딩을 할 수 있어 좋았지만 그것도 잠시, 이제는 너무 더워서 힘들어진다.

쉬다 가다를 반복하다 역시 준비부족을 절감하고 일단 이번의 투어는 여기까지만 하기로 마음먹고

6번국도를 통해 오대산을 거쳐 돌아오기로 했다.

오대산 계곡길을 따라 들어가다 물가에서 잠깐 쉬어가기로 하고 바이크를 주차시키고 개울물로 세수를

하고 다시 출발을 하려는데, 헉 뒷바퀴가 흙속에 묻혀서 아무리 시동을 걸어도 바이크가 흙만 파고

앞으로 가질 못하는 것이었다. 돌을 받치고 혼자 밀어도 보고 생쑈를 하고 있으려니 근처에 있던 친절한

아저씨 두명이 바이크를 꺼내줘서 간신히 나올 수 있었다.

구불구불 계곡길을 따라 올라가면서 역시 바이크의 묘미는 코너링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

다. 아직은 겁이나서 스텝을 긁을 정도로까지 누워보지는 못했지만 좀만 더 연습하면 될 것도 같다.

6번국도로 오대산길을 따라 꼭대기에 올라가면 진부령 진고개 휴게소가 나온다. 여기서 흥미로운

광경을 발견한 것은 강원도 운전면허학원 연수차가 휴게소에 몇대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런 위험천만한 고갯길에서 연수를 하니 어쩐지 강원도 차들이 코너링에 강하더라는 것이 새삼

이해가 가는 순간.

휴게소에서 냉면과 메밀전을 먹고 마저 길을 재촉하려는데, 갑자기 심한 안개지역으로 진입.

불과 10미터 앞조차 구분이 안갈정도로 완전 구름속을 달리는 기분이었다. 매우 서행하면서 한 30분쯤

엉금엉금 달린 끝에 이제 좀 안전해졌나 싶었더니 이번엔 비가 오기 시작한다.

체력도 바닥나고 왼손은 무거운 클러치를 잡느라 손가락이 저려오고 엉덩이도 저려오기 시작하고

몸도 물에 젖어서 파김치가 되기 일보직전. 아직도 수백킬로 더 가야 집이 나올텐데... 아 이것이

라이더의 고독일려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차안에서 편안하게 운전하면서 투어를 할 때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지금은 음악은 오직 할리의 엔진음 소리뿐이고, 운전도 손발만 까딱까딱하면

되는 자동차의 운전과는 달리 정신을 집중해서 온몸을 기울이고 잡아당기고 밀면서 가는 운전이다.

게다가 계속 들이치는 바람과 싸워야만 한다.

어쨌든 그렇게 계속 자기 자신과 싸워가며 간신히 6번국도의 끝쯤에 도달할 무렵, 자동차가 부러워졌던

마음은 순식간에 대반전! 6번국도의 밤에는 고질적으로 막히던 정체구간을 오토바이는 가뿐하게 옆으로

지나갈 수가 있다! 갓길로 가면서 제친 차가 얼핏 세어도 천대는 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여곡절

끝에 집에 도착해서 젖은 옷들을 벗어놓고 더운 물에 샤워를 하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다시 투어를 가게 된다면, 일단 가방을 필수적으로 준비해야겠다. 우비, 갈아신을 편한 신발, 여벌의 옷,

음료수와 헬멧등을 벗어놓을 공간등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헬멧을 필히 교체

해야했다. 풀페이스는 시야가 좁아 답답하고 무거울거 같아서, 오픈페이스 (귀까지 가려지고 앞면을

모두 쉴드로 덮어짐) 형식을 선택하기로 하고 퇴계로로 향했다. HJC 의 CL-33 헬멧과 매연, 먼지를

걸러주는 필터가 들어있는 통풍 마스크를 구매했다. 테스트로 달려봤더니 하프 헬멧과는 비교도

안될정도로 바람과 매연을 잘 막아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진작 이걸로 할 걸..

조만간 주문한 가방이 도착해서 장착하고 나면 다시 갖춰서 투어를 가야지. 그리고 이번에는 사람들과

그룹으로 가봐야겠다.



P.S. 바이크 세차는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P.S.2 주행중 기어를 바꿀때 클러치를 안 잡고 기어를 밟거나 올려도 변속이 되던데 이렇게 해도 괜찮은 것인가요?

imcgames 의 김학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