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예전에 처제가 유럽여행을 갔었던 적이 있다. 한참 구경 열심히 하고 있는데 어느날 걸려온 전화

'언니 나 지갑 도둑맞았어'

다행히 도둑맞은 지갑은 크게 중요하지 않은 돈 조금만 들어있었던 지갑이었기 때문에, 큰 지장은 없었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온 후에 '아니 여행다닐때 소지품 주의하라고 얼마나 주의를 줬는데도 지갑을 도둑맞냐'고 핀잔을 주었는데, 돌아온 얘기가 더 가관이었다.
참고로 처제는 도둑이 많다는 얘기를 듣고 일부러 지갑도 도둑맞아도 괜찮은 걸 별도로 준비했고 여권과 신용카드등 중요 물품이 들은 진짜 지갑은 따로 보관했다고 한다. 이동중에도 지갑은 몸에 꼭 밀착하게 소지하고 수상한 사람이 없는지 수시로 확인했다고 한데도 도둑을 맞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도둑들도 워낙 수단이 교묘해서 아무리 막으려고 해도 대응하기가 쉽지가 않다. 일단 도둑들은 남녀 2-3 명이 팀을 짜서 팀플레이를 한다. 차를 타거나 붐비는 통에 도둑중 여자팀원 2명이 인파에 밀리는 척 하면서 대상의 몸 가까이 접근해서 대상을 대상의 일행으로부터 살짝 멀어지게 만들면서 몸으로 민다. 물론 대상은 그냥 나와 같은 다른 관광객이라고만 생각하며, 여자팀원은 실제로 훔치는 일은 하지 않는다. 보통 해외여행중에 다른 사람과 몸이 부딛히거나 누가 발이 밟히거나 하게 되면 순진한 한국관광객은 '아임쏘리' 하거나 하면서 주의가 흐뜨러지게 된다. 이런 틈을 타서 뒤쪽에서 노리고 있던 다른 팀원이 가방을 칼로 째고 지갑을 살짝 빼낸다. 여자팀원은 친절하게 괜찮다고 얘기하면서 어디서 왔냐 자기도 어디 가보는 중이다 등 친구가 되는 척 하면서 사람의 긴장을 풀고 화제를 다른데로 돌리게 만들어 마무리 작업을 도와준다. 처제의 말에 의하면 정말 알면서도 당할 수 밖에 없을정도로 그 수법이 교묘하고, 그 사람들이 같은 한패였다는 것도 나중에 곰곰히 생각해보고 알았다고 한다.

2.

일반 사람들의 지갑에서 돈을 빼내는 것도 비슷한 방식이다. 그들의 지갑을 노리는 것은 언론과 금융사, 정부 등으로 이루어진 한 팀이다. 그들은 점조직으로 이루어져 있어 서로의 존재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한다. 그들의 목적은 서로 다르지만 그들이 노리는 대상은 하나, 성실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성실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제 재테크의 시대다' 라고 하면서 바람잡이들이 분위기를 만들기 시작한다. 대체로 그들이 써먹는 레퍼토리들은 다음과 같다. '노년이 되서 10억 이상이 없으면 품위있는 은퇴생활을 맞을 수 없다', '현금을 통장에 그냥 둬서 나오는 이자는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마이너스다'. '리스크를 감수하는 것은 필수다' 등의 서적과 출판, 강연들이 눈에 뜨이기 시작한다. 어느정도 분위기가 달아오르면 연예인들까지 오락프로에 나와서 재테크 상품등에 대한 홍보를 하기 시작한다. 신문을 보아도 주가 xx 시대가 온다는 등의 장미빛 전망이 주를 이룬다. 브릭스가 뭔지도 모르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증권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적금을 들러왔던 일반인에게 은행 창구에서 직원이 펀드를 판다.

주가가 올라가고 누가 얼마를 벌었다는 둥의 얘기가 들리면 은행에 현금만 갖고 있던 사람들은 가만히 있으면 바보가 되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 펀드의 안정성은 대한민국 국채 수준이라는 식의 과장광고가 공공연히 행해진다. 이런 상황을 감독해야 하는 정부 관련 기관에서는 자신의 책무를 다하지 않는다. 주가가 올라가고 그것을 경제가 성장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그걸 정부의 치적으로 내세우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말기에는 취임 초기보다 몇배 오른 주가를 근거로 한나라당의 '잃어버린 10년' 논리의 대항논리로 내세웠다.

주가가 오르면 큰 손들이 주식을 팔아먹고 떠날 준비가 다 된 셈이다. 시골의사 박경철의 설명에 따르면 이는 고래가 연못을 떠나는 상황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들이 떠난 이후, 그 돈들은 다른 곳에 머물게 된다. 그곳이 석유나 옥수수 같은 실물 자산이 되면 관련 상품들의 가격이 폭등한다. 이런 돈놀이를 하는 사람들은 '상품시장에 투자하라' 같은 책까지 써서 새롭게 투자자들을 유인한다.

정신을 차려보면 이미 상당한 돈이 금융상품에 묶여있다. 증권 시장에서는 증권사 직원들이 2000포인트 돌파를 기념하며 빵빠레가 울려퍼진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잔치는 끝난다. 거대한 팀플레이로 이루어진 사기극은 곧 대미를 장식한다. 누가 내 돈을 훔쳐갔는지도 모른 채, 성실하게 돈을 모으며 살던 사람들의 주머니는 비어있다.


imcgames 의 김학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