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경제정책들은 언제나 그렇듯, 처음엔 좋은 의도에서 출발하였다.

많은 사람들에게 내 집을 마련하게 해주겠다는 의도,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모두가 부를 만들고 누리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의도에서 새로운 규제, 혹은 규제 완화, 혹은 통화량 공급, 금리인하, 주가 부양, 공공사업 실시등의 경제에 대한 개입이 시작된다.

그렇게 경제와 시장에 대한 인위적 개입이 시작되면, 자연스러운 흐름의 중간 중간에 여러 계층의 탐욕이 끼어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탐욕은 당분간 모두를 만족시켜주는 듯 하지만, 그 탐욕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거품은 점점 커지고, 결국 붕괴에 이르게 된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촉발된 미국발 경제위기에 대해서 이미 많은 비판서와 대안, 대책에 대한 연구와 해설이 등장하였으며, 그 결론은 모두 한가지로 '신자유주의의 종말'을 선언하고 있다.

요약하자면,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개별 경제 주체들의 탐욕 때문에 일어났고, 그 탐욕을 정부가 제대로 규제하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경제 실패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보다 엄격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경제 실패에 있어서 탐욕을 원인으로 삼는 것은, 비행기 사고를 분석하는데 중력을 원인으로 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케인스가 죽어야 경제가 산다' 의 저자 토머스 우즈 주니어는 말한다.

애초부터 유권자들의 선심을 얻기 위해서 FRB 가 돈을 풀어댔고, 주택공급을 늘리는 쪽으로 정책 기조를 삼고, 페니 메이나 프레디 맥 같은 정부 보증 기관이 모기지 채권을 매입하는 것으로 시장의 질서를 왜곡시킨 정부의 개입이 잘못된 것인데, 지금의 금융위기를 정부의 개입으로 인한 금리인하와 시장 규제로 풀어야 한다는 것은 완전히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책 내용을 보면 그러한 정부의 시장 개입 (대체로 좋은 의도로 시작된다) 에 대한 많은 사례들이 소개된다.


나는 시장경제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는 온라인 게임을 운영하면서, 실제 세계의 경제와의 많은 유사점을 느끼게 되고, 또한 많이 배우기도 한다.

게임 내의 시장경제가 왜곡되는 케이스도 가만히 살펴보면 실제 세계와 비슷한 케이스가 많다. 언제나 그렇듯이 항상 처음에는 좋은 의도로 모든 일이 기획된다.

예를 들면 거대 길드의 틈바구니에 끼인 소규모 세력들을 보조하기 위해, 혹은 이제 갓 게임을 시작한 저렙 노아이템 뉴비들을 지원하기 위해, 혹은 신규유저들을 유입시키기 위한 지원책으로 등등 경우는 많다.

어떤 식으로든 모두에게 혹은 상대적 약자에게 혜택이 가는 것을 취지로 하는 대책을 만들 때마다, 기획자와 운영자의 예상을 뛰어넘는 꽁수와 어뷰즈, 오토, 해커, 작업 세력들이 뛰어들게 된다. 운영자들은 수동 제재, 오토 방지를 위한 시스템 도입, 고소 고발 등의 노력을 해보지만, 최후의 승자가 운영자들인 경우는 드물다.

대개의 경우는 둘 중 하나로 귀결되는데, 하나는 결국 운영자들이 백기를 들고 인위적인 부양과 지원을 위한 이벤트나 시스템이 변경되는 쪽인데, 그렇게 되면 기득권 중심의 경제체제가 굳어지게 되고, 그것이 뜻하는 바는 실질적으로 '현질이 필수인 게임' 이 되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그러한 시장경제의 왜곡을 그대로 유지하여 어뷰즈와 오토들이 가치 체제를 붕괴시키고 나서 자리를 뜨고 나면, 코어 유저들도 게임을 떠나게 된다. 이론상으로는 컨텐츠 적인 업데이트를 꾸준히 하는 것으로 유저들을 잡아둬야겠지만, MMORPG 의 컨텐츠 제작 속도가 유저들의 소비속도를 따라잡도록 만드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유저가 떠나고 매출이 줄어든 게임이 되면 제작진으로서도 업데이트를 계속 하기가 힘들어진다. 결국 게임은 황폐화된다.


이 시점에서 마가렛 대처의 생애를 다룬 책 '중간은 없다'가 떠오른다. MMORPG 의 세상에서 '현질 필수인 게임'과 '게임내 시장경제가 황폐화된 게임'의 중간은 과연 어디쯤일까?


[ 그 외 정부와 시장에 대한 잡 생각 ]
- 나는 산업계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라는 것이 대체로 무익하다고 믿는다. 내가 종사하는 업계를 예로 들자면, 게임만들라고 제작지원금을 정부가 '무상지원' 해주거나, 형식적인 연구사업에 참여하면 '보조금'을 지급하는 경우들을 보면 과연 얼마나 제대로 결과가 나오고 있는가?
- 우리나라가 인터넷 강국이 된 것도 정부가 지원을 잘해서라기보다는 우리나라의 좁은 지형과 밀집된 아파트 거주 문화의 산물이다. 인도네시아처럼 나라가 몇천개의 섬으로 나뉘어져 있거나, 호주처럼 땅덩어리는 넓고 사막이 많고 인구는 분산되어 있으면 답이 안 나온다.
- 그렇다고 모든 정부의 규제가 무익하다는 것은 아니고, 외국과의 교역 수준을 어느정도 시간에 따라 조절해주는 것은 효과를 볼 수 있다. 중국은 판호제도를 이용해서 자국 시장의 온라인게임의 국산게임 비율을 엄청나게 끌어올렸다. 대신 이것은 시간을 벌어주는 정도로만 사용해야지 영구적으로 의존해선 안된다. 이벤트를 항상 실시하면 그건 이벤트가 아니다.

imcgames 의 김학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