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을 사 왔다. 내 것으로 사고 싶었지만, 이미 얼마전에 산 블랙베리가 있고, 내 평상시의 용도에는

블랙베리가 잘 맞기 때문에 아이폰이 궁금하긴 했지만 사기는 뭐하고 해서, 마누라의 핸드폰을 아이폰

으로 업그레이드 해주기로 했다. 당신 아이폰 필요해? 아이폰? 응 아이폰. 나도 한번 써보고 싶어 안

그래도 요즘에 자꾸 핸드폰 저절로 꺼지고 그래. 그래 그럼 내 주위에 다들 아이폰으로 바꾸는데 난 이미

산게 있으니까 당신껄로 사줄께. 마누라의 핸드폰과 신분증을 들고가 아이폰으로 번호이동 완료. 뭔놈의

개통 프로세스는 이렇게 번잡한지.


블랙베리와 아이폰을 두개를 나란히 놓고 비교해본다. 미국에서는 확실히 블랙베리가 우위를 점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블랙베리는 극소수 유저에게만 어필할 뿐이다. 그에 비해 한국에서의 아이폰의

열풍은 확실히 체감이 될 정도다. 내 주위에만 한두명이 아닐 정도니.


미국에서의 블랙베리와 아이폰의 점유율과, 한국에서의 블랙베리와 아이폰의 점유율의 차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네트워크 효과와 혼자놀기라는 관점에서 한가지 해석을 생각해본다.


블랙베리는 네트워크 효과에 매우 최적화된 기계다. 블랙베리를 쓰는 사람끼리라면, sms 로 통신을

할 필요가 없다. 그냥 메일을 주고 받으면 된다. 메일 주소도 있던 구글 메일을 사용하면 된다.

보통의 스마트폰의 경우 단말기가 일정 주기마다 메일수신함을 확인해서, 메일이 와 있으면 새로운 메일

이 온 갯수만 알려주고, 유저의 선택에 의해 네트워크에 접속해서 메일함을 열어보는 식이다.

이 방식으로는 sms 처럼 실시간 대화를 하기는 매우 불편하다. 내가 누군가에게 메일을 보내게 되면

상대방은 내 메일을 열어보는게 10초 후일지, 5분후일지 30분 후일지 기약이 없다. 그래서는 sms 처럼

주고받는 대화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메일함을 자주 열어보게 되면 배터리가 그만큼 빨리 소모된다.

그에 비해 블랙베리의 경우에는 푸쉬 방식으로 중앙 서버가 BIS 3G망을 통해 메일의 앞부분을 바로

단말기에게 쏴주기 때문에, 누가 나에게 메일을 보내면 거의 10초 내에 바로 내 단말기에서 그 메일의

본문내용을 읽어볼 수 있다. 키보드도 qwerty 키가 되어 있어서 문자 타이핑에 최적화되어 있다. 그래서

주변에 블랙베리를 쓰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 수록 블랙베리 이외의 단말기는 쓰기 힘들어진다.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블랙베리를 나눠주는 것은 다음과 같은 얘기다. '이제 넌 집에서도 휴일에도 못 쉰다'


미국에는 블랙베리를 쓰는 사람이 이미 많은 상태다. 블랙베리 특유의 장점 때문에 블랙베리를 한 번

쓰게 되면, 다른 폰으로 바꿀 수가 없다. 아이폰이 나와도 블랙베리와는 별도로 따로 사는 사람이 많다

그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말한다 '블랙베리는 마누라, 아이폰은 애인' 갖고노는덴 아이폰이 좋지만 결국

옆에 끼고 살 것은 블랙베리다.


한국의 경우 블랙베리는 기존에 쓰던 사람이 적다. 나 혼자 블랙베리를 갖고 있어도 주변 사람들이 블랙

베리를 쓰지 않으면 효과가 반감되기 때문에 새로운 폰이 나왔다고 해도 선뜻 고르기가 쉽지 않다. 푸쉬

메일의 장점이란 것도 일단 써봐야 느낌이 오는 것이고 눈으로 화려하게 보이는 요소가 아니기에 마케팅

하기도 쉽지가 않다.


아이폰은 혼자 갖고 놀기만 해도 즐겁고 새롭기 때문에, 내 주변 사람이 아이폰을 사지 않았다고 해도

내가 아이폰을 사는데 주저하게 되는 요소로 작용하지는 않는다. 그러면서도 아이폰도 아이폰 나름대로

네트워크 효과를 갖고 있기 때문에 (특히 외부 앱을 이용한 네트워크 효과) 한번 가속도가 붙기 시작하면

제대로 스노우볼을 만들어 낼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주변에 아이폰을 산 놈들은 만나게 되면 하나같이

아이폰의 전도사가 되어 나에게 뽐뿌를 넣는다. 후배가 아이폰용 앱을 하나 보여주는데, 현재 위치 주변

에서 다른 사람들이 아이폰으로 찍었던 다른 사진을 내 카메라 화면 위에 둥둥 띄워서 프리뷰 하면서

사진을 찍게 해주는 앱이다. 정말 미래 속으로 워프한 느낌이다. 나도 아이폰이 하나 사면 이 미래

생활에 동참할 수 있게 된다.



내가 종사하는 온라인 게임 산업은 네트워크 효과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소프트웨어 산업 중 하나다.

많은 이들이 게임이 만든 커뮤니티의 위력을 목도하였기에, 새로운 커뮤니티 게임의 차세대 왕좌를

꿈꾸며 커뮤니티가 활성화 될 수 있을 게임을 만든다. 하지만 많은 게임들은 훌륭한 커뮤니티 기능을

갖고서도 정작 그 안의 사람은 모으지 못하고 한국시장의 블랙베리처럼 스노우볼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온라인 게임은 같이 하면 재밌는 게임이지만, 그 이전에 아이폰처럼 혼자 놀아도 재미있는 게임이어야

한다. 혼자 놀아도 재미있고, 같이 놀면 더욱 재미있는 게임. 그야말로 온라인 게임 디자이너의 Holy Grail

이 아닐 수 없다.


우리 회사의 이름 IMC 는 Impress -> Motivate -> Connect 라는 도식의 앞글자를 따서 만든 이름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Connect 하여 강한 네트워크 효과를 낼 수 있는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이 우리회사의

궁극 목표다. 하지만 사람을 Connect 하기 전에 먼저 사람을 Motivate 시킬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그 전에

사람을 Motivate 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Impress 시킬 수 있어야 한다. 혼자놀기는 중요한 Impress 요소

중 하나다.



imcgames 의 김학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