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길들이기 한다고 5000rpm 이상 안 밟다가 2000km 기점으로 봉인해제 (했지만 날씨가 워낙 추워서 역시 별로 못 달려봄)
1. 차와 사람과 도로간의 일체감을 느낄 수 있는 차. 일반 도로에서 레이싱 카트에 가까운 느낌을 느껴볼 수 있다. 알칸타라로 둘러싼 스티어링 휠과 기어 체인지 레버를 통해 전해지는 느낌은 손맛이라고 불러도 좋을 듯 하다. 이걸 타다가 carrera 4s 를 타니까 과장 약간 보태서 대우 프린스 수동을 탄 느낌이 들었다.
2. 다른 911 들과는 달리 엔진이 뒤 차축에 걸쳐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고, 차 전체가 하나의 쇳덩이로 이루어져 있다는 느낌을 준다. 고속에서 빠른 차선 변경이나 급격한 방향 전환을 할 때 터보를 포함한 다른 911 들은 앞의 쇳덩이와 뒤쪽의 쇳덩이가 링크로 연결되서 따로 노는 느낌이었는데 (마치 물고기가 꼬리를 치는 것처럼) 이것은 오히려 미드쉽 차의 감각에 가깝다.
3. 미쉐린 컵타이어는 엄청난 그립력을 보여준다. 다른 차라면 끼긱 거리면서 약간씩 흘러나가는 것을 PSM 이나 VDC 가 잡아줘야 할 상황을 얘는 그냥 타이어 그립만으로 돌아나간다. 단점은 너무 빨리 닳는다는 것. 드리프트 한번 하려면 타이어가 얼마어치가 닳게 될지가 겁난다
4. 승차감이 의외로 매우 좋다. 첫날 출고했을때는 완전 돌덩이 같은 느낌이었는데, 알고보니 출고 준비 전에 혹시나 오랫동안 대기할 것을 대비해서 타이어 공기압을 50psi 정도로 이빠이 올려놓았다. 기준이 30 psi 인데 20 psi 가까이 올려놓았으니 통통튀는 느낌은 당연했는데, 난 gt3 가 원래 그런 줄 알고 있었다. 근처의 샵에서 공기압을 30 으로 돌려놓자 승차감이 갑자기 부드러워졌다. PASM 을 sport 에서 comfort 로 돌려놓은 느낌? 특히 다이나믹 엔진 마운트 때문에 저속 주행시에도 엔진의 덜덜거림이 심하게 전해지지 않으면서도 고속으로 타이트하게 코너를 돌아나갈 때에는 엔진이 따로 덜렁거리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이정도 핸들링에 이정도 승차감을 보여줄 수 있는 차는 없을 것이다
5. 편의성도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전기형 gt3 rs 에 비해 클러치도 훨씬 가볍고, 무엇보다 앞 차축 리프팅 기능이 있어서 주차장 진입 경사로나 과속방지턱을 만나도 두렵지 않다. 기어는 레이싱용 고내구성 스틸 싱크로나이저와 숏 스로우 기어가 조합된 getrag 제인데 (그냥 까레라의 기어는 aisin 제) 단단하고 묵직하면서 정확하게 들어가는 느낌이 매우 좋다. 빠른 변속을 하면서도 기어를 어디쯤에 쑤셔넣어야되나 헤메서 실수하는 일은 없었다.
6. 뭐니뭐니해도 가장 큰 매력은 엔진음이다. 단순히 마후라의 소음기를 얇게 해서 소리가 크게나는 튜닝마후라의 느낌이 아니라, 애초부터 계열이 다른 음색을 들려준다. 두개의 공명 파이프와 공명 밸브가 장착되어 저속에서는 부밍없는 부드러운 음색의 소리가 나다가 rpm 이 올라가면서 단계적으로 2개의 밸브가 각각 열리게 된다. 회전수가 5000rpm 근처를 지나가게 되면 등 뒤에서부터 뱃고동 소리가 울려퍼지면서 음색이 점점 날카롭게 변해가는데 이 소리가 너무나도 아름답고 자극적이어서 오디오 같은 것은 있어도 안 틀게 된다.
7. gt3 의 숫자만 보고 있으면 그렇게 고성능 차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겨우 43 정도의 토크에 435 마력이라면 더 낮은 가격대의 다른 차들, 예를 들면 gt-r 이나 c63 등에 비해 그다지 뛰어나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숫자 몇가지로 차를 판단하는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관심을 끌지 못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경량화된 바디와, 다운포스, 가속시 뒷타이어를 단단히 눌러줄 수 있는 무게배분과 컵타이어가 만나 결과적으로는 최고의 성능을 낸다는 점이다. fastestlaps.com 의 정보에 의하면 쿼터마일 드래그가 11초 후반대이다. 이정도의 마력으로 11초대의 성능을 내는 차는 드물다
8. 마지막으로, 연비도 좋다. 첫날 길들이기 하느라고 부산까지 다녀온 적이 있는데 (아이폰에 부산의 고급휘발유 파는 주유소 리스트를 담아놓고 부산의 주유소를 목적지로 해서 다녀옴) 정속주행보다 더 빨리 달렸고 춘천쪽으로 돌아서 갔음에도 불구하고, 중간에 급유 없이 부산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맘먹고 정속주행을 하면 10km/l 이상은 무난히 나오고, 가속과 감속을 많이 하면서 달려도 6km/l 이상은 나와준다.
그간 gt3 를 타보고 싶은 생각은 있었는데, 전기형 997 gt3 는 일단 인간적으로 클러치가 너무너무 무겁고, psm 같은 안전장치도 없고, 차고도 낮아서 과연 제대로 내가 탈 수나 있을까 싶은 차였지만, 후기형으로 오면서 그런 문제들이 모두 해결되었다. 어느정도 수동 운전의 경험이 있다면 꼭 한번 경험해봐야 할 차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운전의 목표가 최고속, 직빨로 누가 누굴 이겼다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의도대로 달리는 직결감을 느껴보는 사람이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