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마을에 100명의 사람이 살았다. 100명의 사람들은 각자 땅을 가지고 자기 먹을 쌀을 생산해가며

그냥저냥 살고 있었다. 여기서 그냥저냥 산다는 의미는 풍년이 들어서 110명어치 먹을 쌀이 생겨나면

10명어치 남은 음식으로 떡같은 고급 음식을 먹고, 흉년이 들어서 90명어치 먹을 쌀만 생겨나면 풀뿌리

캐먹어가며 쫄쫄 굶어야 하는 매우 비탄력적인 사회였다는 의미이다.


그러던 어느날, 한명의 천재(편의상 이 사람을 건호라고 부르기로 하자)가 대단한 발명을 해내서, 1명

어치의 땅에서 한번에 100인분의 쌀을 만들어 내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환호했다. 나머지 99명이

모두 놀아도 1명이 안정적으로 100인분의 쌀을 생산해낼 수 있으니, 이제 주기적으로 찾아오던 흉년

이나 홍수같은 자연재해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쌀이 남아돌게 되자, 사람들은 예전처럼 농사를 지을 필요가 없어졌다. 무엇보다도 건호네 집에서

쌀을 생산해낸 다음에, 그 쌀을 혼자 다 먹을 수 없으니 내다 팔기 시작하면서 쌀값이 1/2 떨어졌기 때문

이다 (먹을 수요는 100명인데 쌀의 공급은 100 에서 199 로 늘었으니 가격도 1/2로 내려간다)

쌀값이 떨어지고, 예전처럼 농사를 지어야 할 필요가 줄어들자 사람들은 다른 일을 찾게 되었지만, 작은

마을에선 그다지 할 일이 많지 않았다. 한편 건호네 집은 100배로 생산해 놓은 쌀을 활용해서 무엇을

할까 생각하다가, 어차피 쌀은 남아도는 거, 떡을 만들고 술을 빚기로 하였다. 술을 빚어야 하면 사람이

필요하니 다른 마을 사람들에게 쌀을 주고 대신 노동력을 빌리기로 하였다. 직접 1년 내내 농사를 해서

쌀 1년분을 만드는 것보다는 떡을 치고 술을 빚는 것이 훨씬 쉬운 일이었기 때문에 몇몇 마을 사람들은

건호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건호네 집에 가서 일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일을 하다보니 자기가 갖고 있던

땅은 농사를 짓지 않게 되었기 때문에 결국 쓸모없는 땅에 잡초만 피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사람들은

술과 떡을 맛있게 먹는 건호를 보고 자기네 땅을 팔테니 술과 떡을 달라고 제안하였다. 건호는 저 사람들

의 땅을 사면 거기에 농사를 지어서 100배의 효율을 남길 수 있기 때문에 그 땅을 사들이기로 하였다.



이런 식으로 계속되자, 건호는 땅을 점점 사들이고, 사들인 땅에서 수천 수만명 어치의 쌀을 만들 능력이

생기게 되었다. 물론 수천 수만명 어치의 쌀을 만들어봤자, 먹을 사람도 없이 썩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쌀은 적당히 생산하고 다른 분야에 눈을 돌린다. 처음에는 1년만 빚어서 만드는 술을 만들다가, 나중에는

30년을 숙성해야 나오는 귀한 술 (사실 맛은 17년을 숙성하나 33년을 숙성하나 그렇게 차이는 없다)을

만들기 시작한다. 그래도 돈이 남아돌자 건호는 이 남는 돈을 어떻게 쓸까 고민하게 된 반면, 다른 마을

사람들은 생활수준은 좋아졌지만, 땅도 없어지고 건호네 집에 가서 하인으로 일하거나 공장에 가서 일

하는 신세가 되었다.


건호네 집과 다른 사람들의 빈부격차가 점점 심해지자, 사람들 일부에선 건호네의 과소비와 낭비에 대해

비판하기 시작했다. 건호네 집은 불필요하게 크고 전기도 많이 쓰고, 보통 사람들은 맛있는 음식도 별로

못 먹는데 건호는 귀하디 귀한 음식만 만들어먹고 하니, 고대의 왕의 권세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듣고 건호는 사치와 낭비를 줄이기로 하고, 집에 있던 하인들도 내보내고, 술을 만드는 공장도

폐쇄시켜버렸다. 그러자  당장 큰 일이 나게 되었다. 다들 땅은 이미 건호에게 팔아버렸는데, 건호네 집이

사람을 쓰지 않으니 일거리가 없어진 것이다. 사람들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과소비와 낭비를

해도 좋으니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자고 제안했고, 이제 건호는 남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껏 돈을

쓰고 사람을 부리기 시작했다. 이제 이 사람들이 단순한 일을 하지 않고 좀 더 고차원적인 일을 할 수

있는 방법은 건호가 필요로 할 만한 것을 만들거나, 건호가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바다속에 들어가서 진주를 따와 목걸이를 만들어도 건호가 그것을 원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은 살만한 능력이 없기 때문에 진주를 따러 갈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한편, 건호네 집의 자식들이 부자인 아버지의 권세를 믿고 마을에서 행패를 부리고 다니거나, 부녀자를

희롱하는 일이 벌어지게 되었다. 일부 사람들은 폭력을 동원하여 건호를 없애야 한다고까지 말하기도

하였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건호네 집에서 일을 해서 돈을 받고 있고, 매일 먹는 밥이 건호가 만든

쌀이었기 때문에 건호가 없어진다는 것은 이미 생각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한편, 마을사람들의 위협적인 시선을 느낀 건호는 대타협을 제안하게 된다. 자신을 마을의 특별한자로

인정해주면 병원을 세워서 마을사람들에게 무료 의료 혜택을 제공해주고, 마을 아이들에게 무상으로

교육을 제공해주겠다는 등의 내용이다. 대신 특별한 자가 되면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치외법권을

인정받게 되고, 일부일처제의 관습에서 벗어나 원하는대로 첩을 들일 수 있고, 필요에 따라 법을 바꿀

수 있는 재량을 부여받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마을 사람들은 건호가 만든 매트릭스 속에서 살게 되었다. 끝.

imcgames 의 김학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