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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학규의 lameproof / 2화 ‘게임의 재미를 좌우하는 도전과 보상의 밸런스와 무한 인플레 이론’

안녕하세요, 김학규입니다.

지난 1회 칼럼에서는 “게임이란 사람을 즐겁게 하는 엔터테인먼트 중 하나이고, 게임으로서의 재미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도전’과 ‘보상’의 밸런스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번에는 약속했던 대로 ‘도전과 보상의 밸런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MMORPG의 특징인 장기적인 플레이성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무한인플레에 대해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게임이라고 하면 PC게임이나 콘솔게임 같은 것만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삶의 모든 것이 ‘게임’입니다. 흔히 ‘인생은 게임이다’라고 하지요. 도전과 보상의 밸런스가 맞으면 모든 것이 게임으로 성립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주식투자를 해서 돈을 벌거나 잃게 될 때도 게임 같은 재미 (혹은 허탈감?) 가 느껴질 수 있고, 여자를 사귈 때도 선물 공세도 하고, 그녀의 진심을 얻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 하는 도전을 했을 때 ‘여자의 마음이 가까워 진다’는 보상이 느껴진다면 그것은 인생의 둘도 없는 게임이 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도전을 하고 노력을 기울여도 얻는 것이 없다면 게임으로서의 재미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서 학생이 공부를 한다고 했을 때, 과목에 따라서는 노력을 하면 성적이 오르는 경우도 있지만, 노력을 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노력을 해서 성적이 오르면 공부에도 재미가 붙기 마련이지만, 노력했는데도 전혀 효과가 없었다면 재미를 아주 잃어버리기 쉽겠죠.

그렇다면 도전과 보상의 관계는 실제로 어떤 경우들이 있을까요? 그 관계를 몇가지 알기쉽게 표로 정리해보았습니다.

① 정비례형(도전과 보상이 정비례 하는 경우)

가장 게임성이 좋은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헬스클럽에 가서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는데 1주일 하니까 가슴 둘레가 1센치 늘어나고, 2주일 하니까 2센치 늘어난다면? 누구나 열심히 운동을 할 것 입니다. 수많은 게임 장르 중에서도 유독 MMORPG가 ‘폐인’을 많이 만들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MMORPG는 보상의 한계가 없고, 도전에 대한 보상이 너무나 정직하기 때문에(정비례) 유저와 게임간의 상호 작용이 무한히 일어 납니다. 게다가 조금씩 더 스스로 요령이 생기고 익숙해지게 되면서 게임이 상업적으로 돈을 버는 속도도 빨라집니다. MMORPG의 보상이 정직한 이유는 게임의 상당 요소가 숫자로 표현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어느 게임을 캐릭터별로 레벨 99까지 키워봤습니다. 라는 얘기를 들으면 아주 명쾌하게 그 게임을 많이 했고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겠죠. 그리고 조작방법이 대체로 간단하기 때문에 게임 초보자라고 해도 끈기있게 시간을 투자하면 누구나 레벨업을 해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직하다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후에 설명할 것이지만 이것은 매우 이상적인 경우입니다. 지속적으로 보상이 주어지는 한 플레이어는계속 게임 플레이에 몰두할 수 있게 됩니다. 매출을 잘 발생시키는 게임 컨텐츠는 도전과 보상의 상한선이 높고 정비례 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게임이 노가다성이 짙다, 그렇지 않다는 저 사선의 기울기에 따라 달라진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② 상한형(정비례로 출발했지만 어느 수준부터는 더 이상 보상이 없는 경우)

패키지 게임을 했다고 가정해 보죠. 유저가 아무리 열심히 게임을 하더라도 어느 순간에 도달하면 더 이상 할 것이 없습니다. 스토리모드의 엔딩을 봤거나, ‘디아블로2’로 치면 레벨의 상한인 99가 돼서 할 것도 없고, 이미 ‘이글혼’이나 ‘윈드포스’같은 풀세트 아이템을 다 찬 경우가 되면 더 이상 도전을 할 의욕이 없어지게 됩니다. 이렇게 할 것이 더 이상 없는 경우, 유저는 미련 없이 게임을 접습니다.
다른 게임의 경우도 시나리오를 다 깨고 엔딩을 보고나면 플레이어에게는 더 이상의 보상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이런 도전과 보상의 밸런스는 상한선의 한계가 뚜렷하게 존재하고, 보상 자체가 일정 수준 이후부터는 존재하지 않는 경우입니다.
MMORPG의 경우도 유저들이 많이 하는 전형적인 불만 중 하나가 ‘고렙이 되고 난 후에 할 것이 없다’라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꾸준한 업데이트를 통해 새롭게 상한을 더 높여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혹은 스타나 위닝처럼 도전의 대상이 게임이 아니라 다른 플레이어가 되게 유도함으로써 사람과 사람의 대결에 의해 또 다른 보상, 예를 들면 남을 이겼을 때의 성취감, 대회개최라던가 프로게이머 같은 외부적 요소의 도입에 의해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습니다.

③ 초기 진입 장벽형(처음에 아무리 노력을 해도 보상을 얻을 수 없는 경우)

처음부터 아무리 관심을 갖고 노력을 한다고 해도 진입 장벽이 높은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대전격투 게임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여성 유저에게 ‘철권’같은 난이도가 높은 게임을 가르칠 경우, 절대로 순식간에 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약한 인공지능 상대를 때려 눕히는 재미야 있겠지만 대전격투의 본질인 ‘대인전’에서 재미를 쉽게 느끼기 힘듭니다. 물론 조작방법과 싸움의 방식을 경험으로 깨닫고 나면 재미가 있지만, 재미를 느낄 때 까지가 소요시간이 너무 길어집니다.

만약 MMORPG 같은 게임이 이런 경우라고 하면 서비스 초기에 많은 사람들이 우르르 떨어져 나갈 것입니다.


④ 비주얼 노벨형(보상이 처음부터 일정하게 유지되는 경우)

비주얼 노벨형 게임이 보여주는 전형적인 도전과 보상의 밸런스입니다. 일단 유저는 별다르게 노력할 것이 없습니다. 그저 보상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데, 그것이 일정 수준 이상은 쉽게 늘어나지 않는다.

결국 비주얼 노벨은 첫 번째 칼럼에서 언급 했던 것처럼 게임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엔터테인먼트라고는 할 수 있는 컨텐츠입니다. 내가 노력해서 얻는 재미가 아니라 ‘주어지는 재미’이기 때문입니다. 이런식의 재미는 그냥 영화나 애니, 만화책을 보면서 얻는 재미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물론 분기와 멀티엔딩을 통해서 재미를 느낄 수도 있지만 역시 한정적입니다.


⑤ 언밸런스형(높은 레벨이 될수록 적자가 되는 경우)

게임으로 따지면 고렙이 돼서 스킬을 찍었더니 쓸 모도 없고… 특정 레벨대가 되니까 사냥을 나가면 나갈수록 오히려 물약값이 더 들어서 적자만 나고.. 오히려 별로가 되는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는 대표적으로 MMORPG에서 하향패치가 일어나는 경우입니다. 게임은 결코 내려오는 경우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하향패치는 정말 무서운 것이죠.


⑥ 일상다반사형(계단식으로 보상이 띄엄띄엄 급증하는 경우)

가장 일상생활과 가까운 도전과 보상의 밸런스입니다. 예를 들어서 수학이나 영어, 일본어 등을 공부할 때 ‘어느 날 원리가 이해됐다’, ‘말문이 열린다’, ‘귀가 뚫린다’라고 하듯 갑자기 보상이 확 뛰어오르는 경우입니다.

일상다반사형은 노력과 도전만이 투입되는 ‘고난의 시기’가 존재합니다. 이런 단계를 극복할 정도로 끈기가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 확실한 보상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경우의 도전을 통해서 톱니바퀴들을 하나씩 만들 때는 보상이 없다가 어느 순간, 그것들이 맞물려 돌아가기 시작하면 갑자기 보상이 급상승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 마지막 형태는 가장 일반적인 형태로 사실 1번~5번의 그래프를 모두 담고 있습니다. 일정 부분들만 떼어놓고 본다면 모든 밸런스 형태를 살펴볼 수 있어서 무척 흥미롭습니다.


앞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게임들이 어떤 밸런스 모델을 지향해야 하는가라고 한다면 단연 1번의 형태인 ‘정비례’를 지향해야 합니다. 한번 팔고나면 끝나는 패키지 게임이 아니라 계속 업데이트를 해야 하고, 유저서비스를 해야 하는 온라인 게임이 되기 위해서는 당연히 유저가 오랫동안 게임에 머무르기를 원할 것입니다. 이것은 지난 번에 일본에서 강의를 하면서도 꺼냈던 이야기 인데요, 정비례형이 되려면 유저에게 무한히 보상을 줘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유저는 더 이상 도전할 것도 없고, 더 보상을 받을 것도 없다면 게임을 떠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제작자가 상한선을 계속 끌어올릴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면 유저가 상한에 부딪히지 않게 하기 위해 하는 일은 보통 2가지입니다. 유저가 상한에 도달하기 매우 어렵게 만들어서 위로 갈수록 점점 더 레벨업이 극단적으로 어렵도록 유도하거나, 아니면 하향패치를 통해서 유저의 갈길을 더욱 멀게 만들거나 하는 경우입니다.

하지만 경험을 통해 볼 때 두가지 다 그다지 즐거운 일이라고는 하기 어렵습니다. 레벨업은 물론 갈수록 힘들어지는 경우가 많지만, ‘예전에는 1시간 플레이를 해서 10의 재미를 얻었던 것을 고렙이 돼서 100시간을 해도 10의 재미밖에 얻을 수 없다면 굉장히 짜증이 날 것입니다. 하향패치의 경우에는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오랫동안 재미를 주기 위해서는 ‘① 정비례형’이 돼야 합니다. 그렇다면 정비례형을 만들려면 ‘무한 인플레 모델’을 채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인플레라고 하니까 웬지 거부감이 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너무 급격하지 않으면서 안정적으로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는 것은 장기적 성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사람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희망’이 있어야 합니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을 꺼야’라는 기대가 있으면 희망이고, 그렇지 않으면 절망밖에 남지 않을 것입니다.
게임의 경우 내가 현재 10 레벨인데 한시간 사냥을 나갔더니 100골드를 얻을 수 있었고, 이걸로 물약등을 사고 나니 10 골드가 남았다고 가정해봅시다. 만약 20 레벨, 100 레벨이 되었는데도 마찬가지로 한시간에 10골드 밖에 남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레벨업할 맛이 날까요? 아마 나지 않을 것입니다.
게임이건 실제 사회건 모든 구성원들은 성장을 기대합니다. 앞으로 내가 더 높은 수준이 될 수 있고, 더 많은 재화를 벌어들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기에 오늘 하루가 힘들어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엄격하게 게임내의 경제체제가 생산과 소비의 밸런스가 0으로 맞춰져 있으면 어떻게 될까요? 위에서 말한대로 고렙이되건 저렙이 되건 사냥을 해도 뭘 해도 항상 돈을 벌 수 없는 상태가 됩니다. 그러면 당연히 재미가 없겠죠. RPG의 재미는 성장하는 맛인데 성장의 재미가 없다면 말이 안됩니다. 그래서 레벨이 높을수록 더 많은 돈을 벌게 해 주려면 게임 전체적으로 점점 돈이 늘어나게 됩니다. 플레이어가 벌어서 쓰고 남은 돈이 계속 쌓이게 되니까요. 다른 재화보다 돈이 더 많아지면 상대적으로 돈의 가치는 줄어들게 됩니다. 그것이 물가 상승을 의미하는 것이고, 바로 인플레이션을 뜻하는 것입니다.

돈이건 레벨이건 스킬이건 유저에게 무한한 성장을 약속한다는 것이 장기적으로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의 포인트입니다.

순수한 자본주의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바로 ‘인간의 욕망을 무한히 인정한다’ 라는 것입니다. 원래 인간의 욕망은 무한합니다. 그것을 인위적으로 제한해서, 돈을 얼마 이상 벌면 안된다. 집을 두채 이상 가지면 안된다. 같은 식으로 막다보면 공산주의쪽으로 기울어지게 됩니다.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완전히 순수한 자본주의에도 문제점이 있지만 (부익부 빈익빈등) 공산주의에는 더욱 더 문제가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게임도 마찬가지로 공산주의적 마인드로 접근하면 절대로 발전하기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유저가 열심히 플레이를 해서 돈을 많이 벌었는데 GM이 해킹이나 비정상적 플레이를 한 것이 아니냐? 라고 해서 충분한 증거도 없이 함부로 계정을 압류한다면 엄청난 반발과 불만이 일어날 것입니다.

다소 이야기가 옆길로 샜지만, 인간의 욕망을 무한히 인정하기 위해서는 ‘무한 인플레’가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즉, 오랫동안 유저들이 모여서 도전과 보상의 재미를 얻을 수 있는 게임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한 인플레’의 경제원리를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참고로 무한 인플레를 가장 안정적으로 잘 실천하고 있는 업계는 PC업계입니다. ‘반도체의 집적밀도는18개월마다 2배로 성장한다’라는 무어의 법칙 (한마디로 컴퓨터의 가격은 그대로이면서 성능은 1년 반마다 2배씩 늘어난다)이 충실히 지켜지고 있고, 특히 그래픽 분야는 무어의 법칙을 뛰어 넘어서 엄청난 고속 성장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지금의 PC만으로도 일상생활에 필요한 컴퓨터 사용은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문서편집이라던가, 계산이라던가, 인터넷이라던가, 게임이라던가 하는 것들은 지금의 PC로도 충분합니다. 게다가 현대에는 웬만한 선진 국가에서는 PC보급율도 매우 높기 때문에, 이대로라면 앞으로 PC가 팔리지 않게 되어버릴 것입니다. PC라는 것이 소모품도 아니기 때문에 한번 사면 10년 이상 잘 돌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만약 이것뿐이라면 PC업체들은 물건을 팔 수 없게 되어서 망해버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고 지금도 계속 새로운 더 고성능의 PC가 팔려나가는 이유는 인텔과 엔비디아, ATI같은 회사들이 더욱 더 높은 성능의 하드웨어를 꾸준히 만들어내고, MS를 비롯한 각종 회사들, 특히 게임회사들이 그런 더 높은 성능의 하드웨어를 요구하는 소프트웨어를 만들어서 유저들이 따라오지 않으면 안되게끔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아마 이러한 성능 인플레는 무한히 계속될 것이고, 그 인플레가 계속되는 한 IT업계는 계속 성장할 것입니다. 반대로 현재의 사람들이 지금의 성능에 만족해버리고 더 이상 pc 를 사지 않게 된다면 IT업계는 PC A/S 나 중고 판매업자밖에 남지 않게 되어버리겠죠.

게임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유저들은 계속 따라오고, 개발자는 더욱 강한 몬스터와 강한 무기, 새로운 지역을 만들어내서 끊임없이 도망가게 됩니다. 이러한 유저와 개발자의 ‘끝이 없는 술래잡기’는 막을 내려선 안됩니다. 유저들도 업데이트를 꾸준히 따라가면서 ‘이제 더 이상은 없는가?’라고 불만을 이야기 하지만 막상 끝나기를 원하지는 않습니다. 개발자들도 게임을 끝내고 싶은 마음도 있겠지만, 끝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MMORPG 게임의 법칙입니다.

게임이 갖는 재미의 기본은 도전과 보상의 밸런스이고, 도전과 보상의 예는 게임 외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 스스로의 삶을 얼마든지 재미있게 살려고 하면 가능하고, 재미 없게 살려면 또 그렇게 바뀔 수도 있습니다. 학업이건 직장생활이건 인간관계에서건, 도전과 보상의 관점으로 보면 세상이 게임으로 보일 것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게임개발자들의 자세와 개발팀의 포지셔닝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imcgames 의 김학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