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초반만해도

중고등학생이 정상적인 경로로 PC게임을 구입할수 있었던 곳은 전자랜드같은 '전자상가'에서만 가능했더랬습니다. 

아니면 동네에 있는 작은 컴퓨터 상점에도 인기작을 좀 갖다놓기도 했었죠..


아무튼 한창 하고 싶었던 것이 많았던 시기인 중학생 시절에 회수권(요즘으로 치면 버스카드, 줄여서 버카)아껴가며, 간식 사먹을돈 아껴가며 돈을 모아서 게임을 야금야금 샀었는데,

그 최종점은 1993년도에 나왔던 'X윙'입니다. 당시만 해도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게임 '트레일러'를, 어느 컴퓨터 상가에서 매일 틀어놓곤 했는데 그때 제 눈을 사로잡았던게 X윙 트레일러...

아무튼 그 X윙을 사기전까지 시간만 되면, 좀 멀리있던 '전자랜드'에 들러서 X윙이 나왔는지 확인하면서,

아쉬운 발걸음을 달래기 위해 이런저런 게임들을 샀었는데,

그중 하나가 이번에 소개할 '어둠의 씨앗'이란 게임입니다.


'어둠의 씨앗'은 주로 어두운 게임을 만들었던 'Cyberdreams'라는 회사에서 제작한 작품입니다.

Dark_Seed_Cover.jpg


국내에는 '에일리언'의 원화가로 잘 알려진 HR기거가 작품 전반의 비주얼을 담당해서 더 유명해진 게임인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 저도 어렸을적에 겁이 없었구나.. 라고 생각될정도로, 게임은 참 기괴합니다.


게임 소개에 앞서 HR기거의 작품 세계를 잠시 소개해보자면,

기본적으로 남녀의 생식기에 대한 페티시즘이 강력하게 깔려있고, 네크로필리아(사체애호)적이기때문에,

보는이에 따라 굉장히 불쾌한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사실, 영화 '에일리언' 때문에 사이버틱한 선입관이 생겨서 그렇지, 그의 작품을 보면 SF와는 거리가 좀 있습니다. (오히려 에일리언이의 외계인들이 전통적인 '외계인' 스타일은 아니었죠)


아무튼...


기본적으론 포인트앤 클릭 식의 어드벤처 장르이고, 인터페이스나 진행 방식 등은 '시에라' 게임에 더 가깝습니다.

게임의 난이도는 어드벤처 게임치고는 제법 어려운 편입니다.

그당시 유행하던 어드벤처 게임들과는 달리, '시간의 흐름'에 대한 부분도 신경써야하고, (아이템중에 태엽시계가 있는데 수시로 태엽을 감아줘야 제대로 된 시간을 알 수 있습니다)

퍼즐 풀이가 좀 연계성이 떨어진달까..?

게다가 주인공이 '죽는' 어드벤처 게임이다보니, 공략없이 끝까지 무사하게 엔딩을 보기란 쉽지않습니다. (까딱 잘못하면 죽는 장면이 뜹니다.. 감전사라든지..)


대략적인 줄거리는..

CD32_games-dark_seed-ss.jpg 

비교적 성공한 작가인 주인공은 시골에 저택을 구입하면서 악몽에 시달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곤 3일간(4일간이었나?) 악몽의 근원을 찾아간다는게 큰 뼈대.


악몽때문에 매일아침 진통제와 샤워를 해줘야하는 주인공 '마이크 도슨'은 매일아침 의문의 소포를 받습니다.

그리고 악몽에서 봤던 어둠의 씨앗때문인지, 현실에서도 악몽이 연속되는 듯한 고통에 시달립니다.


그러다 거실에 있는 큰 거울의 깨진부분을 찾아서 맞추게 되고,

그 거울을 통해 '이계'에 진입하게 됩니다..


이계의 모습은 악몽 그 자체.. (지만 약간 코믹한 면도 있긴합니다.. 만 역시나 기괴합니다)

결국... [스포일링: 이계에는 외계인이 있었고, 그 외계인이 실제로 어둠의 씨앗을 도슨의 머리에 심어놨던것.. 도슨의 활약으로 외계인은 지구에서 떠나게 되지만..]

악몽은 끝나지 않는다는 좀 암울한 내용입니다.


이러한 줄거리,

그러니까 외부의 사람이 외진 지역의 대저택에 입주하고,

그 대저택의 '비밀'에 고통받고 결국엔 악몽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는  내용은,

호러문학의 대가, 러브크래프트의 (비교적 정상적인 작품인) '벽속의 쥐'와 비슷한 구석이 있습니다. ['코스믹호러'라는 부분도 비슷하고](저도 읽은 건 아니고, EBS영미문학관을 통해 알게되었습니다)


뭐,, 그건 그거고..

이 게임에 특이한 부분이 있는데, 바로 사운드입니다.

요즘이야 뭐 메인보드에 자그마한 칩셋 하나로 8.1서라운드 음향까지 구현하는 시대지만,

90년대 초반만해도, '사운드카드'는 가격도 가격이지만 거대한 크기였습니다. ('옥소리'카드 같은경우는 지금 하이엔드 VGA카드만큼 길었죠)

그래서 사운드 카드를 구입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죠..

대부분 PC스피커(당시엔 껌딱지 형태도 있었죠)로 만족해야했고, 주로 단음만 출력이 가능했습니다. (폴리사운드 이런거 없었죠)

어둠의 씨앗은 이 시대에 무려 '모든 캐릭터 대화의 음성지원'을 하는 게임이었고,

놀라운건 PC스피커로도 사람 목소리 비슷한게 나올수 있도록 구현을 해놨다는 것입니다..


뻣뻣한 캐릭터 애니메이션(실사 스프라이트 형식이긴한데..)과 뭔가 기괴한 음성지원이,

HR기거의 그로테스크한 비주얼과 만나 굉장한 시너지효과를 내서,

호러 어드벤처 게임으로는 (좀 엉성한 구성에도 불구하고) 제법 괜찮은 작품이 되었습니다..

뭐.. 이러한 '하드웨어적, 소프트웨어적 한계' 덕택에 공포감이 더해진 '어둠속에 나홀로' 같은 게임도 있긴합니다..  (단색 폴리곤에 얼굴인지 엉덩인지 구분할수도 없는 3D캐릭터가 2D 배경에 나옴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공포감을 조성했죠)

2편이 나오긴했는데, 1편보다는 좋은 평을 듣지 못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아마 어설픈 한글화 때문이기도 했던것 같고.. 1편도 한글판은 영 아니라고 하더군요)


이런 독특한 호러게임은 아마도 '어드벤처 장르'가 황금기를 맞이했던 90년대였기때문에 나올수 있지 않았나 하는게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최근들어 텔테일 게임즈를 통해 명품 어드벤처 게임들이 조금씩 나오고 있긴하지만,

어둠의 씨앗처럼 마이너한 취향의 정통(포인트앤 클릭) 어드벤처 게임은 아마 더이상 나오긴 힘들것 같다는게 좀 안타까운 점입니다.. (물론 암네시아 같은게 있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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