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사라져야 할 일제문화  



[한겨레] 교직생활 털갈이를 할 즈음, 그러니까 1980년대 신안 섬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데 그 학교는 낡은 건물을 들어내고 강당을 신축하는 일을 벌이고 있었다. 그런데 공사 중 문제가 생겼다. 일제시대 지은 목재 건물의 시멘트 초석이 얼마나 단단하든지 힘센 장정들이 하루종일 달라붙어 큰 쇠망치로 내려부숴도 도무지 깨지지 않았던 것이다. 금방 준공검사를 마친 건물의 유리창이 열리지 않아 대패로 깎고 문지르고 하는 우리네 현상과 비교할 때 감회가 남달랐던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1학년 학생들이 학교에 들어와서 맨 처음 듣는 말이 무엇일까 ‘앞으로 나란히’다. 체제적으로 명령과 통솔을 주지로 하는 군대에서도 ‘앞으로 나란히’가 없는데 왜, 누가 ‘앞으로 나란히’를 만들어 학교에 보급시켰을까 이제, 정년을 1년 남짓 앞둔 시기에야 ‘앞으로 나란히’에 대한 교육적 반성을 하면서 우리 교육의 보수적인 문화풍토 속에서 자행되고 있는, 개선해야할 교육관행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 교육과정은 민족정체성교육을 제1목적으로 삼고 있는데 학교 현장에서는 믿지 못할 상황이 여과없이 횡행한다. 지난 5월 초 운동회를 했는데 ‘운동회의 민속놀이 지역축제화’를 표방하는 교장의 교육관 때문에 담당선생님이 무척 어려워했다. ‘축제를 잃어버린 민족.’ 삼국사기에는 연등회, 팔관회가 있고 동맹, 영고, 무천의 축제와 정월 대보름 곳집 태우기를 시작으로 3월 삼짓날 강남 갔던 제비를 맞아들이는 일에서부터 동지섣달 그믐밤 귀신 쫓는 팥죽까지. 이처럼 세시풍속들이 즐비했던 놀이문화의 풍요를 우리는 잃어버렸다. 아니, 빼앗겨버렸다.

엊그제 텔레비전에서 일본 남부지방의 ‘마쯔리’를 소개한 적이 있다. 1천년을 이어 내려온다는 작은 도시의 축제를 보며 일본인의 전통문화 계승과 요즘 한창인 명패도 족보 없는 우리 지역축제의 현실을 비교하며 서글픔을 느꼈다. 하기야 저들은 국수집 5대 가업의 대를 잇기 위해 대학 교수를 훌쩍 벗어던지는 사람들이다.

올해 우리 학교 운동회는 지역사회 대동단결의 기치를 걸고 가족놀이, 동네놀이를 기준으로 흰호랑이패, 푸른용패, 검은거북패를 나누어 투호놀이, 윷놀이, 제기차기판을 벌였다. 차일을 치고 가족, 동네 사람들 끼리끼리 둘러앉아 먹고 마시며 놀았다. 남정네들의 씨름판과 여인네들의 강강술래 한 판을 벌이지 못한 것은 못내 아쉽다.

민족정체성교육이라는 화두를 제쳐두고 대한민국 초등교육 교육과정 이념이 추구하는 제1목표가 한국인 육성인데 이 밝은 대명천지에도 학교에서는 애국조회를 한다. 애국조회는 애국심을 표방하지만 일제시대 동방요배의 다름 아니다. 반장은 명령 하달의 계통적 통치의 수단화고, 주번활동은 감시하고 적발해서 벌주는 통제의 방법이었는데 일본인 그들도 하지 않은 제국주의 식민화교육 행태가 우리에게는 교육적이라고 미화되어 바람직스럽게도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이천만 전남 여수 중흥초등학교 교장, 2chm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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