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라디오헤드처럼 어려운 노래는 만들기 어려워요' 같은 내용의

리플을 본 적이 있는데, 과연 이런 류의 노래와 요즘 대량생산 되고 있는

가요에 창작 난이도의 차이가 존재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때때로 이런 음악을 만듦에 있어 특별히 풍부한 감성이 필요할거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는데, 그건 단지 환상에 불과하지 않을까 합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댄스음악이든 밴드음악이든 결국 쉽다고 생각하면

쉬울 수 있고, 어렵다고 생각하면 충분히 어려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라디오헤드의 음악이 특별합니까? 물론 평범하지만은 않습니다. 라헤의

노래는 중요한 특징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결코 대단한 것은 아니며

그것이 가지는 특징만큼 다른 댄스음악이나 기타 음악들 역시 그들만의

특성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그 특성을 파악하고 그런 음악을 만드는데에는

똑같은 지식이나 경험, 그리고 감성이 필요한 겁니다.

---

라디오헤드의 노래가 주는 그 특유의 몽환적인 분위기 역시 이론적으로

분석해 모방이 가능합니다. 애초부터 라헤가 자신들 음악 특유의 분위기를

추구함에 있어서도 이론적 분석을 했을지 안 했을지는 모르지만 말입니다.


라디오헤드 특유의 몽환적 분위기를 내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변성화음입니다.

기본적으로 메이져 스케일을 바탕으로 하되 차용화음으로도 불리는 변성화음을

빈번하게 사용해 이 노래가 메이져인지 마이너인지 모르게, 즉 쉽게 말해 노래가

밝은 거 같으면서도 우울한 듯 한 그런 모호하고 몽롱한 분위기를 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는 겁니다. 두번째로 중요한 요소는 주로 4, 8마디의 짧은

코드 진행을 변화 없이 계속 반복해 잔잔하고 몽환적인 느낌을 유지해 나가고

거기에 멜로디에 변화를 주어 진행해 나간다는 점이죠.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는 '기타나 신디의 몽몽한 사운드'는 단지 부수적인 요소에

불과합니다. 그것들은 단지 소리의 느낌을 낼 뿐이지 곡 전체의 느낌을 좌우하는

건 어쨋거나 코드와 멜로디니까요. 물론 이것들이 아무 의미도 없다는 건 아닙니다.

---

요점은 결국 이런 특이하고 몽환적인 노래도 특별한 감성으로만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론적 지식이나 경험(구지 꼭 책에서 공부해서 이런 곡들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경험이나 스스로 쌓은 지식에 의해 일반적인 메이져 코드가

아니라 마이너 코드를 섞음으로써 이런 몽환적인 느낌을 낼 수 있구나 하는 걸 깨닫는

그 과정 역시 여기에 포함하는 겁니다.)이 바탕이 되면 만들 수 있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이런 노래만이 특별한 것이 아니며 그 말은 곧 평범한 댄스음악을 만드는 것과

그 과정이나 발상이 결코 다르지 않다는 겁니다. 결국은 이론적 혹은 경험적 지식, 거기에

각각의 감성이 더해져서 만들어지는 것이지 뭐 어떤 음악은 감성적으로 특별해야 한다,

혹은 어떤 음악은 감성이 덜해도 그냥 기계적으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 다만, 지식적 차이는 장르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동요랑 클래식을 비교해 보면.)

적어도, 라디오헤드와 일반 가요에서는 그 고저의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없네요.

---

다시 안녕바다의 별 빛이 내린다는 곡에 대해서 얘기 합시다.

이 노래도 언뜻 몽환적인 느낌이 나시지 않습니까? 마치 별이 쏟아지는 듯한 알카노이드

게임을 하면서 들으니 더 몽환적이고 멋지 노래네요. 이 노래가 몽환적으로 들리는 이유는

뭘까요? 그건 바로 위에서 말한 그 주요한 2가지 이유가 똑같이 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곡을 들어보면 B#메이져 스케일에 코드 진행이  I - V - VIm - IVm, Vm 이렇게 네마디가

계속 반복 됨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확실하진 않아요. 걍 방금 듣고 적은거임. 다르다 해도

대충 다른 대리거나 하는 등 근소한 차이가 아닐까 하는데) 정확한 코드가 아니라도 대충

봐서도 알 수 있는 점은 마지막 마디의 두 코드, 즉 IVm, Vm 이 두 화음이 원래 B#메이져

스케일에 존재하는 코드가 아니며 마이너 스케일에 존재하는 즉, 변성화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묘하게 노래가 우울한 느낌도 주고 몽몽하고 하죠. 게다가 노래의 처음부터 끝까지 이

4마디의 코드가 계속 반복 됩니다. 변화 없이. 이런 점이 이 노래를 몽환적인 느낌으로 만들어

주죠. 차용화음은 한국 대중음악에서 빈번히 사용되지만, 특히나 브릿팝 밴드들이 많이 쓰는 듯.


안녕바다 뿐만 아니라, 다른 밴드나 혹 다른 대중음악 작곡가들이 마음만 먹으면 이런 분위기를

내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라헤라고 어려운 것도 아니고 소녀시대라고 쉬운 것도 아니죠.

---




아 슈발 그러니까 이 모든 글의 요점은.



한국 대중음악 작곡가들이 그런 노래를 못 만들어서 그러고 있는 게 아니라,

대중의 감성은 지금 잘 나가는 그런 노래들을 원하고, 그들은 거기에 맞춰서

그런 취향의 노래들을 만들고 있다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