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차리니까 경기도 과천시 문원동이라는 촌농내에서 살고 있었죠..

그당시 국딩1년..

세상이 돈좀 있을 80년대 중후반.. 맞벌이 하는 가족들 사이에서 언제나 혼자 놀다 보니

성격은 점점 내성적으로 되고..

어머니는 언제나 바쁘고 아부지도 바쁘고..

그렇다 보니.. 용돈을 주는대 500원..

그당시 500원이라면 아이스가 몇개더라 10개는 먹던가..


나름대로 큰돈이였죠.. 아이스 50원 할때 였으니.


나름대로 돈이 있어서 반찬 또한 남들 먹지 못하는 것들 파인애플 바나나

이게 주식이 될정도 였죠.. 집은 허름한 월세 방이였지만.. 먹는거 입는건 일류 였죠..


이게 시초 였을까요? 아버지 사업이 기울다가 결국 망했고..

그당시 영삼 아져씨가 한창 지지고 복고 할떄였나 봅니다..

결국 전학 가고.. 그 학교에서도 잘 적응 못하고 그런 저런 일로 또 전학..

초등,중학 모교는 2군대 입니다.. 둘다 한번씩 전학 갔죠.

중학교떄 전학 가니까 전학 한 그날!

수련회 -_-;; 알지도 못하는데 끌려 가서 고생하고.. 성격은 점점 내성적으로.

집과 학교의 거리는 멀어서 버스로 1시간..

그당시 PC통신에 미쳐서 결국 어린 나이에 폐인 생활 하며 지냈죠..


전화 요금 30만원 나오고 일단 10대 맞고 시작 하자..

심하게 맞았습니다..


그후 우리집엔 전화를 설치 안했습니다 -_-;; 지금까지.

그러다가 중학교 3년때 조금 안정이 됐는지 경기도 안양에 전세방을 얻었고..

아마 이때가 가장 행복하지 않았나 하네요.


나름 적응하고 공부도 그럭저럭 하던 그시절.


고교를 실업계로 갔으나.. 그당시 실업계는 그냥 공부 못하는 사람들의 집합소..

고교 1년때.. 조금은 성격 변화가 있었지만.. 모토가 내성적이라 힘든 시절은 고교 2년 까지 지속..

초 중 때 꿈꾸던 고교 캠퍼스 라이프는 뭐 럭키짱 수준의 학원물을 보는 기분으로 사라졌고..

결국 고3때 그럭저럭 즐거운 삶이 있으나.. 대학 수험에 실패 하고

1년 재수...


1년 재수 하면서 공부는 안하고 놀기만 하고 인생이 허무해져 죽을 결심도 많이 했지만 결국 살아남..

죽는게 사는거 보다 더 힘들다는 교훈을 얻고 대충 공부 함..


결국 세종대학교 학점은행제 라는 그냥 간판만 세종대라는 것에 들어 감..

학원 수준의 느낌.. 그냥 그런 대로 대학이라는 물을 먹는 걸로 만족.


영장 나와서 학교 휴학 했으나... 이상하게 꼬여서 영장이 1년 뒤에 나옴.. 결국 1년간 또 쉼 -_-;;

군대 갔고 훈련소 간후 동사무소로 들어감..


이때 부모님이 이혼 소식을 알고 약간의 충격이였으나 그런 저런 느낌으로.


이때 고교 동창인 여자애랑 사귐.. 그럭저럭 행복..


돈이 필요해서 알바.. PC방 알바를 가장 길게 하고 어학원 알바 까지.. 하다...

공무원 한다고 다 떄려 침.. 대략 300 모으고 서울로 상경..


서울에서 공부 한다고 했으나.. 쉽게 되질 않고.. 집 문제 여자 문제.. 문제란 문제는 다 겪고

공부 포기.. 다시 경기도 안양으로 이사..

여자랑 해어지고 아퍼 할떄.. 우연히 그 여자가 해어진지 20일도 안되서 새로운 남자가 생긴 소식 접함

미쳐서 날뛰었음 -_-;;


지금은 안정된 상태지만.. 결국 지금은..


제가 제일 하기 싫은 IT 업종에서 일하는중.. 설마 설마 했는데... 난 절대 IT 안할꺼야 라면서 살았는데.

이거 하고 사는군요.


300 모으고 보증금 700 모아서 총 1천만원 있던거 지금은 반인 500으로 줄고.. 30평 짜리 방이 지금은

5평으로 줄고...


나이 25 다음주면 26이군요... 대단히 우울한데요 -_-;;


이상은 높은데.. 현실은 지옥임..


그래도 살아야 하니까 뭐라도 해야죠.